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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밤에 매화를 읊다(陶山月夜詠梅) / 이 황(李滉)
獨倚山窓夜色寒 [독의산창야색한]
梅梢月上正團團 [매초월상정단단]
不須更喚微風至 [부수경환미풍지]
自有淸香滿院間 [자유청향만원간]
步屧中庭月趁人 [보섭중정월진인]
梅邊行繞幾回巡 [매변행요기회순]
夜深坐久渾忘起 [야심좌구혼망기]
香滿衣巾影滿身 [향만의건영만신]
홀로 산창에 기대서니 밤이 차가운데
매화나무 가지 끝엔 둥근 달이 오르네
구태여 부르지 않아도 산들바람도 이니
맑은 향기 저절로 뜨락에 가득 차네
뜰을 거니노라니 달이 사람을 좇아오네
매화꽃 언저리를 몇 번이나 돌았던고
밤 깊도록 오래 앉아 일어나기를 잊었더니
옷 가득 향기 스미고 달그림자 몸에 닿네
매화는 세한삼우(歲寒三友)의 일원이요, 사군자(四君子)의 으뜸이다.
추위를 무릅쓰고 피어나는 그 강인하고도 고결한 기품과
불개정심(不改貞心)의 군자절(君子節)은
뭇 꽃 가운데 이를 앞설 자가 다시 없다.
만뢰(萬賴)가 구적(俱寂)한 밤 늦은 시각
청철(淸澈)한 밤기운이 싸느라이 스며드는 산창에 기대어,
갓 피어난 매화를 바라보며
그지없이 흐뭇해 하고 있는 작자의 면모가 엿보인다.
마치 매월(梅月)이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달 뜨자 꽃봉오리를 터트리며 향기를 내뿜는 매화는
차가운 겨울 달빛에서야만 가장 제격으로 어울림을 보게 된다.
그들의 만남은 밀회(密會)가 아니라,
의기 상투(意氣相投)한 천상과 지상의
떳떳한 호응의 장면이다.
한매(寒梅)는 봄바람의 선구(先驅)는 될지언정
그의 동반자이기를 부끄러워한다.
세한지절(歲寒之節)에 피어 모진 추위에 저항은 할지언정
휘젓는 봄바람에 이연(怡然)히 동화하여
속물(俗物)로 전락하기를 단호히 거부한다.
명리(名利)에 유혹되지 않는 군자의 군자다운 지조는
화창한 봄바람을 거부하는 매화의 매화다운 절개와 서로 통한다.
행여 잡념에 마음 흔들릴세라 도학자적(道學者的) 지절(志節)을
스스로 확인 점검하는 동시에 문인 후생들에 주는
완곡한 계칙(戒飭)이기도 하다.
봄바람으로 하여금 향기를 선동(煽動)케 하지 않아도
저절로 고여 넘치는 맑은 향기는 온 집 안에 가득하듯이..
청덕(淸德)이란,
표방(標榜)하거나 선전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
드러나지 않게 감추고 채덮고 하여도
오히려 널리 멀리 세간에 퍼지고 흠모(欽慕)되어
은연중 교화(敎化)가 이루어지는 이치임이 또한
행간에 함축되어 있음을 본다.
우리는 이 시에서,
스스로 청향에 흡족해 하고 있는,
온유돈후(溫柔敦厚)한 선비의 지조를 심도있게 음미할 것이다.
이 시는 연첩된 여섯 수 중의 첫 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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