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小栢舟] 잣나무 배
汎彼中流小柏舟 幾年閑繫碧波頭 後人若問誰先渡 文武兼全萬戶侯
범피중류소백주 기년한계벽파두 후인약문수선도 문무겸전만호후
저 강 한가운데 떠 있는 조그만 잣나무 배 몇 해나 이 물가에 한가로이 매였던고 뒷사람이 누가 먼저 건넜느냐 묻는다면 문무를 모두 갖춘 만호후라 하리
세월이 흐른 뒤, 황진이가 자신의 첫사랑을 생각하며 지었을 법한 시이다.
◆ 詠半月(영반월) - 반달을 노래함
誰斷崑山玉 裁成織女梳 牽牛離別後 愁擲壁空虛 수착곤산옥 재성직녀소 견우이별후 만척벽공허
누가 곤륜산 옥을 깎아 내어 직녀의 빗을 만들었던고 견우와 이별한 후에 슬픔에 겨워 벽공에 던졌다오
이 시는 초당(草堂) 허엽(許曄, 1517~1580)의 시인데 황진이가
자주 불러 황진이의 시로 오인되고 있다는 학설도 있다.
산은 옛 산이로되 물은 옛 물이 아니로다 주야(晝夜)에 흐르거든 옛 물이 있을손가 인걸(人傑)도 물과 같도다 가고 아니 오는 것은
황진이 자신을 청산에 비유하여 변치 않는 정을 노래하고 있다.
청산(靑山)은 내 뜻이요 녹수(綠水)는 님의 정이 녹수 흘러간들 청산이야 변할손가 녹수도 청산을 못 잊어 울어예어 가는고
황진이 자신을 청산에 비유하여 변치 않는 정을 노래하고 있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
외로운 밤을 한 허리 잘라내어 님 오신 밤에 길게 풀어 놓고
싶다는 연모의 정을 황진이만의 맛깔난 어휘로 노래하고 있다.
● [황진이와 화담 서경덕] 마음이 어린 후이니…
마음이 어린 후이니 하는 일이 다 어리다 만중 운산(萬重雲山)에 어느 님 오리마는 지는 잎 부는 바람에 행여 올가 하노라
- 화담 서경덕
내 언제 무신(無信)하여 님을 언제 속였관데 월침 삼경(月沈三更)에 올 뜻이 전혀 없네 추풍(秋風)에 지는 잎 소리야 낸들 어이 하리오
- 황진이
그리운 정에 떨어지는 잎 소리마저도 님이 아닌가 한다는
화담의 시조에 지는 잎 소리를 난들
어찌하겠느냐는 황진이의 안타까움을 전한다.
● 청산리 벽계수야… <황진이>
청산리 벽계수(靑山裏 碧溪水)야 수이 감을 자랑 마라. 일도창해(一到蒼海)하면 돌아오기 어려우니 명월(明月)이 만공산(滿空山)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황진이와 벽계수와의 이야기는 서유영(徐有英,1801~1874)의
<금계필담(錦溪筆談)>에 자세히 전한다.
황진이는 송도의 명기이다. 미모와 기예가 뛰어나서
그 명성이 한 나라에 널리 퍼졌다.
종실(宗室) 벽계수가
황진이를 만나기를 원하였으나 ‘풍류명사'가 아니면 어렵다기에
손곡(蓀谷) 이달(李達)에게 방법을 물었다. 이달이 “그대가 황진이를 만나려면 내 말대로 해야 하는데 따를 수 있겠소?”
라고 물으니 벽계수는 “당연히 그대의 말을 따르리다”라고 답했다.
이달이 말하기를 “그대가 소동
(小童)으로 하여금 거문고를 가지고 뒤를
따르게 하여 황진이의 집 근처 루(樓)에 올라 술을 마시고
거문고를 타고 있으면 황진이가 나와서 그대 곁에 앉을 것이오.
그때 본체만체하고 일어나 재빨리 말을 타고 가면
황진이가 따라올 것이오.
취적교(吹笛橋)를 지날 때까지 뒤를 돌아보지 않으면 일은
성공일 것이오, 그렇지 않으면 성공하지 못할 것이오” 했다.
벽계수가 그 말을 따라서 작은 나귀를 타고 소동으로 하여금 거문고를 들게 하여 루에 올라 술을 마시고 거문고를 한 곡 탄 후 일어나 나귀를 타고 가니 황진이가 과연 뒤를 딸았다.
취적교에 이르렀을 때 황진이가 동자에게 그가 벽계수임을 묻고 "청산리 벽계수야..." 시조를 읊으니,
벽계수가 그냥 갈 수가 없어서 고개를 돌리다 나귀에서 떨어졌다. 황진이가 웃으며 “이 사람은 명사가 아니라 단지 풍류랑일 뿐이다”
라며 가버렸다.
벽계수는 매우 부끄럽고 한스러워했다. 한편 구수훈(具樹勳, 영조 때 무신)의
<이순록(二旬錄)>에는 조금 달리 나와 있다.
종실 벽계수는 평소 결코 황진이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고 말해왔는데,
이 이야기를 들은 황진이가 사람을 시켜 그를 개성으로 유인해왔다.
어느 달이 뜬 저녁, 나귀를 탄 벽계수가 경치에 취해 있을 때
황진이가 나타나 “청산리 벽계수야...” 시조를 읊으니
벽계수는 밝은 달빛 아래 나타난 고운 음성과 아름 다운 자태에 놀라
나귀에서 떨어졌다.
어져 내 일이야 그릴 줄을 모르던가 이시랴 하더면 가랴마는 제 구태어 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이별의 회한을 노래한 것으로 황진이가 시조의
형식을 완전히 소화하고 있다는 평을 듣는 시조이다.
● 奉別蘇判書世讓(봉별소판서세양) 소세양 판서를 보내며 <황진이>
月下梧桐盡(월하오동진) 달빛 아래 오동잎 모두 지고 霜中野菊黃(설중야국황) 서리 맞은 들국화는 노랗게 피었구나. 樓高天一尺(누고천일척) 누각은 높아 하늘에 닿고 人醉酒千觴(인취주천상) 오가는 술잔은 취하여도 끝이 없네. 流水和琴冷(유수화금랭) 흐르는 물은 거문고와 같이 차고 梅花入笛香(매화입적향) 매화는 피리에 서려 향기로워라 明朝相別後(명조상별후) 내일 아침 님 보내고 나면 情與碧波長(정여벽파장) 사무치는 정 물결처럼 끝이 없으리.
소세양이 소싯적에 이르기를,
“여색에 미혹되면 남자가 아니다”라고 했다.
황진이의 재주와 얼굴이 뛰어나다는 말을 듣고는
친구들에게 약조하기를 “내가 황진이와
한 달을 지낸다 해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자신이 있네.
하루라도 더 묵는다면 사람이 아니네”라고 호언장담을 하였다. 그러나 막상 송도로 가서 황진이를 만나보니 과연 뛰어난 사람이었다.
30일을 살고 어쩔수 없이 떠나려 하니,
황진이가 누(樓)에 올라 시를 읊었다.
이 시를 듣고 소세양은 결국 탄식을 하면서
“나는 사람이 아니다”라며 더 머물렀다. 이 때 황진이가 읊은 시가 바로 <봉별소양곡세양(奉別蘇陽谷世讓)>이다.
● 別金慶元 (별김경원) 김경원과 헤어지며 <황진이>
三世金緣成燕尾 (삼세금연성연미) 삼세의 굳은 인연 좋은 짝이니 此中生死兩心知 (차중생사양심지) 이 중에서 생사는
두 마음만 알리로다 楊州芳約吾無負 (양주방약오무부) 양주의 꽃다운 언약
내 아니 저버렸는데 恐子還如杜牧之 (공자환여두목지) 도리어 그대가 두목(杜牧)처럼
한량이라 두려울 뿐.
一派長川噴壑? (일파장천분학롱) 한 줄기 긴 물줄기가
바위에서 뿜어나와
(용추백인수총총) 폭포수 백 길 넘어 물소리 우렁차다 飛泉倒瀉疑銀漢 (비천도사의은한) 나는 듯 거꾸로 솟아 은하수 같고 怒瀑橫垂宛白虹 (노폭횡수완백홍) 성난 폭포 가로 드리우니
흰 무지개 완연하다 雹亂霆馳彌洞府 (박난정치미동부) 어지러운 물방울이
골짜기에 가득하니 珠?玉碎徹晴空 (주용옥쇄철청공) 구슬 방아에 부서진 옥
허공에 치솟는다 遊人莫道廬山勝 (유인막도려산승) 나그네여, 여산을 말하지 말라 須識天磨冠海東 (수식천마관해동) 천마산야말로 해동에서 으뜸인 것을.
황진이가 자신을 포함한 송도삼절의 하나로 꼽을 정도로
사랑한 박연폭포.
송도의 기생이었던 황진이는 물론 이곳을 자주 방문하여
풍류를 즐겼을 것이다.
눈앞에 그려지는 듯한 유려한 표현은 박연의 장관을 짐작케 한다. 박연폭포는 현재 개성시 개풍군(開豊郡) 천마산(天摩山) 기슭에 있다.
● 滿月臺懷古 (만월대회고) 만월대를 생각하며 <황진이>
古寺蕭然傍御溝 (고사소연방어구) 옛 절은 쓸쓸히 어구 옆에 있고 夕陽喬木使人愁 (석양교목사인수) 저녁 해가 교목에 비치어 서럽구나 煙霞冷落殘僧夢 (연하냉락잔승몽) 연기 같은 놀(태평세월)은 스러지고
중의 꿈만 남았는데 歲月嶸破塔頭 (세월쟁영파탑두) 세월만 첩첩이 깨진 탑머리에 어렸다. 黃鳳羽歸飛鳥雀 (황봉우귀비조작) 황봉은 어디가고 참새만 날아들고 杜鵑花發牧羊牛 (두견화발목양우) 두견화 핀 성터에는 소와 양이
풀을 뜯네. 神松憶得繁華日 (신송억득번화일) 송악의 번화롭던 날을 생각하니 豈意如今春似秋 (기의여금춘사추) 어찌 봄이 온들
가을 같을 줄 알았으랴
● 松 都 (송 도) 송도를 노래함 <황진이>
中前朝色 (설중전조색) 눈 가운데 옛 고려의 빛 떠돌고 寒鐘故國聲 (한종고국성) 차디찬 종소리는 옛 나라의 소리 같네 南樓愁獨立 (남루수독립) 남루에 올라 수심 겨워 홀로 섰노라니 殘廓暮烟香 (잔곽모연향) 남은 성터에 저녁연기 피어 오르네
* 황진이는 옛 고려의 수도인 송도에서 태어나 평생을
송도를 중심으로 살았다.
남아 있는 몇 편 안 되는 황진이의 시 중에 두 편이
송도를 노래한 것이다.
相思相見只憑夢 (상사상견지빙몽) 그리워라, 만날 길은
꿈길밖에 없는데 ?訪歡時歡訪? (농방환시환방농) 내가 님 찾아 떠났을 때
님은 나를 찾아왔네 願使遙遙他夜夢 (원사요요타야몽) 바라거니, 언제일까
다음날 밤 꿈에는 一時同作路中逢 (일시동작로중봉) 같이 떠나 오가는 길에서 만나기를
이 시는 김안서 작사, 김성태 작곡으로 <꿈길에서>
라는 제목의 가곡으로 만들어졌다.
*<성옹지소록>에 보면 황진이가 거문고를 즐기는 모습이 나온다.
-황진이는 성품이 소탈하여 남자와 같았으며 거문고를 잘 타고
노래를 잘 불렀다. 평생에 화담 선생을 사모하여 반드시 거문고를 메고 술을 걸러
선생의 거처에 가서 한껏 즐기다가 돌아가곤 했다.
서경덕 또한 거문고를 즐겼으며,
거문고에 대한 몇 편의 시를 남기고 있다.
그의 성리설은 우주의 근원과 현상세계를
모두 '하나의 기(一氣)'로 파악하였는바,
그는 이 하나의 기를 '태허(太虛·우주 생성 이전의 상태)'
개념으로 표출하고 ' 선천(先天)'과 일치시켰다.
모든 현상세계가 생성되어 나오는 동정(動靜)
생극(生克)의 계기는 이 하나의 태허 속에 내포되어 있으며,
'기'가 스스로 그렇게 하는 것이라 해석한다.
그는 '이(理)'를 '기'의 위에 두기를 거부하고 '기'가
생성 작용하는 '후천(後天)'의 현상세계에서
그 정당성을 잃지 않게 하는 자기통제력으로 파악하였다.
즉 '이'는 '기를 주재하는 것'이라 하여, '이'를 '기'의
한 속성으로 한정한 것이다.
그가 <줄 없는 거문고에 새긴 글>과 <줄 있는 거문고에 새긴 글>을
나란히 지었던 것도 바로 소리 없는 가운데
소리를 듣는 음악의 본체와 소리 속에서 음률의 조화를
즐기는 음악의 응용으로, '태허―선천과 동정―후천'의
구조로 이루어진 그의
기철학적 세계를 생생하게 암시해주는 것이다.
無絃琴銘(무현금명) 줄 없는 거문고에 새긴 글 <화담 서경덕>
1. 琴而無絃, (금이무현) 거문고에 줄이 없는 것은 存體去用. (존체거용) 본체(體)는 놓아두고 작용(用)을 뺀 것이다. 非誠去用, (비성거용) 정말로 작용을 뺀 것이 아니라 靜基含動. (정기함동) 고요함(靜)에 움직임(動)을
함유하고 있는 것이다. 聽之聲上, (청지성상) 소리를 통하여 듣는 것은 不若聽之於無聲, (불약청지어무성) 소리 없음에서
듣는 것만 같지 못하며, 樂之刑上, (악지형상) 형체를 통하여 즐기는 것은 不若樂之於無刑. (불약악지어무형) 형체 없음에서
즐기는 것만 같지 못하다. 樂之於無刑, (악지어무형) 형체가 없음에서 즐기므로 乃得其 , (내득기 ) 그 오묘함을 체득하게 되며, 聽之於無聲, (청지어무성) 소리 없음에서 그것을 들음으로써 乃得其妙. (내득기묘) 그 미묘함을 체득하게 된다. 外得於有, (외득어유) 밖으로는 있음(有)에서 체득하지만, 外得於無. (내득어무) 안으로는 없음(無)에서 깨닫게 된다. 顧得趣平其中, (고득취평기중) 그 가운데에서 흥취를 얻음을 생각할 때 爰有事於絃上工夫 (원유사어형상공부) 어찌 줄(絃)에 대한
노력을 기울이게 되는가?
2. 不用其絃, (불용기현) 그 줄은 쓰지 않고 用其絃絃律外官商. (용기현현율외관상) 그 줄의 줄소리 밖의
가락을 쓴다. 吾得其天, (오득기천) 나는 그 본연을 체득하고 樂之以音. (락지이음) 소리로써 그것을 즐긴다. 樂其音, (락기음) 그 소리를 즐긴다지만, 音非聽之以耳, (음비청지이이) 소리는 귀로 듣는 것이 아니요, 聽之以心. (청지이심) 마음으로 듣는 것이다. 彼哉子期, (피재자기) 그것이 그대의 지표이거늘 曷耳吾琴. (갈이오금) 내 어찌 거문고를 귀로 들으리?
琴銘(금명) 거문고에 새긴 글 <화담 서경덕>
1. 鼓爾律, (고이율) 그대의 가락을 뜯으며 樂吾心兮, (락오심혜) 나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諧五操, (해오조) 여러 가지 곡조를 고르되 無外淫兮 (무외음혜) 밖으로 지나치진 않는다. 和以節, (화이절) 강단으로써 조화시키어 天其時兮, (천기시혜) 날이 가고 사철이 바뀌듯하며, 和以達, (화이달) 통달함으로써 조화시키어 鳳其儀兮. (봉기의혜) 봉황새도 법도를 따라 춤추게 한다.
2. 鼓之和, (고지화) 그것을 뜯어 조화시킴으로써 回唐虞兮, (회당우혜) 요순시대로 돌아가며, 滌之邪, (척지사) 사악함을 씻어냄으로써 天與徒兮. (천여도혜) 자연과 융화되는 사람이 된다. 操?洋, (조아양) 높다란 소리?넓은 소리를 타지마는 人孰耳兮. (인숙이혜) 그 누가 귀담아 듣겠는가? 繁而簡, (번이간) 번거롭기도 하거니와 有如味兮. (유화미혜) 간략한 데 뒷맛이 있느니.
偶吟(우음) 우연히 짓다 <화담 서경덕>
殘月西沈後(잔월서침후) 잔월도 서쪽으로 진 뒤에 古琴彈歇初(고금탄헐초) 오랜 거문고 타기를 비로소 쉬네 明喧交暗寂(명훤교암적) 밝고 소란함과 어둡고 적막함이 섞이니 這裏妙何如(저리묘하여) 이 속의 오묘함이 어떠하냐
황진이의 임종에서 빠뜨릴 수 없는 인물이 바로 백 호(白湖)
임제(林悌, 1549~1587) 이다.
평생 황진이를 못내 그리워하고 동경하던 그는
마침 평안도사가 되어 가는 길에 송도에 들렀으나
황진이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절망한 그는 그길로 술과 잔을 들고 무덤을 찾아가 눈물을 흘리며 다음의 시조를 지어 황진이를 애도했다.
청초(靑草)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웠는다 홍안(紅顔)은 어디 두고 백골만 묻혔나니 잔(盞)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퍼하노라
조정의 벼슬아치로서 체통을 돌보지 않고
한낱 기생을 추모했다 하여 백호는
결국 파면을 당하며 얼마 지나지 않아 임종을 맞게 된다.
슬퍼하는 가족들에게
"내가 이같이 좁은 나라에 태어난 것이 한이로다" 하고
눈을 감았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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