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 2012. 1. 6.
위 치: 충남 서산시 음암면 신장리
[ 민태원 선생 소개 ]
민태원 선생은 서산시 음암면 신장리에서 태어난 언론인이자 문인으로 그 유명한 수필 ‘청춘예찬’의 저자이다. 1894년 부친 민삼형의 5남 1녀중 4남으로 태어났다. 호는 우보(牛步), 16세에 상경하여 경성관립고등보통학교(경기고의 전신)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하여 와세다대학 정치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18년 한국에서 처음으로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을 '애사'(哀史)라는 제목으로 번역했다. 1920년 김억·변영로·남궁벽·염상섭 등과 함께 "폐허"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그 뒤 동아일보 사회부장, 조선일보 편집국장 등을 지내면서 화려한 산문체로 언론계에서 이름을 빛냈다. 소설로는 기구한 인생을 살아가는 한 소녀를 통해 가난과 추함을 보여주는 "어느 소녀"(폐허, 1920. 7), 예술가 지망생을 주인공으로 한 "음악회"(폐허, 1921. 1) 외에 "겁화 劫火"(동명, 1922. 9) 등을 발표했다. 1925년 일본 번역서 "오노가츠미 己が罪"를 "부평초"라는 제목으로 번역했고, 1948년에는 포아고베의 "철가면"을 "무쇠탈"이라는 제목으로 번역해 단행본을 펴냈다. 역사서로 "갑신정변과 김옥균"이 있다. 1934년 41세의 젊은 나이로 서울 궁정동 자택에서 별세하였다.
큰 길은 서산시 해미면에서 서산시로 가는 왕복 4차로의 국도입니다. 오른 쪽 샛길로 빠져나가면 민태원 선생의 고향 마을이 나옵니다. 민태원 선생의 생가지를 찾아가실 분은 내비게이션에 '충남 서산시 음암면 신장리 604'를 입력하고 가시면 쉽게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샛길로 빠져나오면 '청춘예찬 마을'이라고 새겨져 있는 표석이 나옵니다. 오른 쪽 멀리 보이는 비닐하우스 근처에 민태원 선생의 생가지가 있습니다.
'청춘예찬 마을' 표석
저 멀리 흰색 차가 있는 곳에서 우회전을 하여 들어가면 민태원 선생의 생가지가 나옵니다. 이 곳에서 약 300미터 정도 들어가면 나옵니다.
저기 파란색 지붕을 한 창고 앞으로 나 있는 도로를 이용하여 왼쪽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민태원 선생 생가지는 비닐하우스가 있는 곳 근처에 있습니다.
민태원 생가지는 비닐하우스 위에 검정색으로 뭔가 덮어져 있는 곳 바로 우측에 있습니다.
민태원 선생 생가지를 찾아서 마을회관(?) 앞을 지나고 있습니다.
이 곳은 삼거리로 보이지만 사실은 사거리 교차로입니다. 이 곳에서 진직하여 약 150미터 정도 들어가면 나옵니다.
저기 보이는 비닐하우스가 있는 곳 바로 앞에 생가지가 있습니다.
전봇대 옆에 이 곳이 민태원 선생의 생가가 있었던 자리임을 알려주는 표석이 있습니다.
민태원 선생 생가지
이 곳이 민태원 선생의 생가가 있었던 곳입니다.
생가는 없어지고 터만 남아 있어서 많이 실망스러운가요? ㅎㅎ
표석에 민태원 선생의 약력이 기재되어 있습니다.
구경을 마치고 돌아가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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