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슬산 참꽃이 만개한 광경
春日城山偶書(봄날 성산에서)
김성일(金誠一)
誰謂吾生窶(수위오생구) 누가 내 삶이 가난하다 말하나
春來事事奇(춘래사사기) 봄이 오니 일마다 기이한 것을
山鋪紅錦障(산포홍금장) 산에는 붉은 비단병풍 펴졌고
天作碧羅帷(천작벽라유) 하늘에는 푸른 비단휘장이 드리워져 있네
拂石雲生袖(불석운생수) 돌 스치자 구름은 소매에서 피어나고
呼樽月滿危(호준월만위) 술잔 드니 달빛은 잔에 가득하다
古書還有味(고서환유미) 옛 책은 읽을수록 맛이 있나니
芻豢可忘飢(추환가망기) 맛있는 고기 맛도 잊어 버렸네
맛보기 - 나이 오십을 지천명이라고 말한다. 하늘의 뜻을 알게 된 나이라는 뜻이다. 이전에는 깨닫지 못했던 자연의 경이로움을 새롭게 인식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 시는 선조 때의 명신이었던 학봉 김성일이 50세(1587년)에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하여 안동 서쪽의 낙동강 가에 있는 청성산(靑城山)에 머물면서 봄날을 맞은 소회를 읊은 것이다.
평소 공직에 있을 때 바쁜 일상으로 인해 계절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했지만 이제 여유가 있어 봄을 실감하게 된다. 만산을 둘러보니 기이하게 붉은 꽃으로 가득하여 마치 병풍을 드리운 듯하고, 청자빛 하늘은 푸른 휘장이 드리워진 듯하다. 낮에 산에 오르면 소매 끝에서 구름이 피어나고, 밤에 밖에서 술을 마시면 술잔에 달빛이 넘치도록 쏟아진다. 이렇게 계절의 운치를 만끽하면서 읽고 싶은 책을 맘껏 보는 일이 맛있는 고기를 먹는 것보다 진미라고 말한다.
작가는 이 시를 통해 관직에서 벗어나 고향에서 맞은 봄날의 풍광과 자신의 일상을 그림 그리듯 잘 묘사하고 있다. 여기서 마지막 구의 추환(芻豢)은 소나 양 등의 고기를 말한다. 봄이 보여주는 경이로움은 낙향하면서 느꼈던 공허함과 쓸쓸함을 물리치고 새로운 느낌으로 작가의 마음을 물들인다.
김성일(1538~1593)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호는 학봉(鶴峰). 이황의 문인이다. 1564년(명종 19) 사마시에 합격하면서 여러 벼슬을 지냈다. 1590년 통신부사(通信副使)가 되어 정사(正使) 황윤길(黃允吉)과 함께 일본실정을 살피고 이듬해 돌아왔다. 이때 서인인 황윤길은 일본의 침략을 경고했으나, 동인인 그는 일본의 침략 우려가 없다고 보고하여 당시의 동인정권은 그의 견해를 채택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잘못 보고한 책임으로 처벌이 논의되었으나 동인인 유성룡의 변호로 경상우도초유사에 임명되었다. 그 뒤 경상우도관찰사 겸 순찰사를 역임하다 진주에서 병으로 죽었다.
학문적으로 이황의 주리론(主理論)을 계승하여 영남학파의 중추역할을 했으며, 예학(禮學)에도 밝았다. 저서에 〈상례고증喪禮考證〉·〈학봉집〉이 있으며, 이황의 〈자성록自省錄〉·〈퇴계집〉 등을 편집·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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