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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전구형왕릉(傳仇衡王陵)

미르뫼 2013. 5. 29. 16:18

경상남도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 경사진 언덕에 사적 제214호로 지정되어 있는 가야 10대 임금인 구형왕의 무덤으로 전해지고 있는 특이한 형태의 돌무덤이 있다. 이것은 예로부터 '전(傳) 구형왕릉(仇衡王陵)'이라고 전해져 오는데, 곧 가락의 마지막 왕 구형왕의 무덤이라고 한다. 구형왕릉 앞에 전(傳)자가 붙은 이유는 그의 능이라는 확증이 없이 다만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것이다. 전 구형왕은 구해(仇亥) 또는 양왕(讓王)이라 하는데 김유신의 할아버지이다. 521년 가야의 왕이 되어 532년 신라 법흥왕에게 영토를 넘겨줄 때까지 11년간 왕으로 있었다.

이 무덤을 둘러싸고 종래에는 석탑이라는 설과 왕릉이라는 2가지 설이 있었다. 이것을 탑으로 보는 이유는 이와 비슷한 것이 안동과 의성지방에 분포하고 있는데 근거를 두고있다. 왕릉이라는 근거는 『신증동국여지승람』31권 『산음현 산천조』에 ‘현의 40리 산중에 돌로 쌓은 구룡이 있는데 4면에 모두 층급이 있고 세속에는 왕릉이라 전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 무덤에 왕명을 붙인 기록은 조선시대 문인인 홍의영의 『왕산심릉기』에 처음 보이는데 무덤의 서쪽에 왕산사라는 절이 있어 절에 전해오는 『왕산사기』에 구형왕릉이라 기록되었다고 하였다.

일반무덤과는 달리 경사진 언덕의 중간에 총높이 7.15m의 기단식 석단을 이루고 있다. 앞에서 보면 일곱단(7단)을 쌓아 올렸으며,  뒷면은 비탈진 경사를 그대로 이용하여 만들었기 때문에 평지의 피라미드식 층단을 만든 것과는 차이가 있다. 무덤의 정상은 타원형을 이루고 있다. 또 다른 특이한 점은 네 번째단에 정방형의 감실이 만들어져 있다. 감실의 깊이는 65cm인데, 무슨 용도로 사용된 것인지 확실치 않다. 돌무덤의 중앙에는 ‘가락국양왕릉’이라고 쓰인 비석이 있고 그 앞에 석물들이 있는데 이것은 최근에 세운 시설물이다.

조선 정조 17년(1793)에는 왕산사에서 전해오던 나무상자에서 발견된 구형왕과 왕비의 초상화, 옷, 활 등을 보존하기 위해 ‘덕양전’이라는 전각을 짓고, 오늘날까지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출처 : 문화재청)

 

 

 

홍살문(홍문) - 능(), 원(), 묘(), 대궐, 관아() 따위의 정면에 세우는 붉은 칠을 문()으로 둥근기둥  개를 세우고 지붕없이 붉은살을 세워 놓은 문이다. 홍살문의 붉은 색은 신성한 공간으로 침입하려는 잡귀를 막기 위함이다. 홍살문이라는 단어에서 살이라는 글자는 화살 전(箭) 자의 음이 아닌 살이라는 뜻을 딴 글자이며, 홍살문에는 붉은 화살과 삼지창이 꽂혀있고, 또한 삼태극이 붙어 있기도 하다. 청, 적, 황색의 삼색의 바람개비 모양의 삼태극은 天地人의 우주를 상징화한 것이다.

 

 

 

홍살문 앞의 좌우에 있는 석수상(石獸像)인데, 봉분을 지키는 수호의 상징인 암수의 석호(石虎)를 표현해 놓은 듯하다.

 

 

구형왕릉에는 곡장(봉분을 보호하기 위해 3면을 둘러싼 담장)이 둘러져 있고 들어가는 입구에는 솟을삼문을 세웠다.

 

 

 

문인상(文人像)은 왕명에 복종한다는 의미로 홀(임금을 만날 때 지니는 물건)을 지니고 서 있다. 무인상(武人像)은 왕을 호위하는 무관을 형상화한 석물로 칼을 잡고 있다. 왕릉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문인상이 적고 무인상이 크게 조각되어 있으며, 우측에는 문인상과 무인상의 크기를 비슷하게 조각하여 자연스러운 조화로움을 나타내고 있다.

 

 

 

문인석과 무인석의 얼굴에서 미소를 찾아볼 수 없다. 즉 미소 짓지 않는다. 그렇다고 화나거나 무서운 표정도 아니다. 근엄하게 다문 입에서 왕의 영혼을 변함없이 지키는 충정이 느껴진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변함없는 상태, ‘중용(中庸)의 표정’  왜 이렇게 무표정한 모습으로 조각했을까. 단순히 왕 앞에 도열한 신하(臣下) 차원을 넘어 영혼을 보호하는 신인(神人)의 경지로 보았기 때문이다. 인체 곡선을 따르지 않고 사각기둥 형태로 조각한 것도, 목 없이 얼굴을 가슴에 묻은 비현실적 기법도 경건하게 왕을 지키는 영속적 신성(神性)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문인석과 무인석의 행동은 왕 앞에 한껏 숙인 듯 존경을 나타내고 있는 모습이다.(출처 : 동아일보 '숨쉬는 조선왕릉,)

 

 

왕릉에서 볼 수 있는 장명등(長明燈)으로 사찰의 석등과 비슷한 형식이며, 왕릉에 투영된 불교사상을 나타낸다. 

 

 

앞에서 보면 일곱단(7단)을 쌓아 올렸으며,  뒷면은 비탈진 경사를 그대로 이용하여 만들었기 때문에 평지의 피라미드식 층단을 만든 것과는 차이가 있다. 무덤의 정상은 타원형을 이루고 있다. 또 다른 특이한 점은 네 번째단에 정방형의 감실이 만들어져 있다.

 

 

돌무덤의 중앙에는 ‘가락국양왕릉(駕洛讓王陵)’이라고 쓰인 비석이 있고 그 앞에 석물(石物)이 있는데 이것은 최근에 세운 시설물이며 혼유석(魂遊石)이다. 석물은 임진왜란 이후 혼유석(魂遊石)이라고 불렸다. 봉분 아래 잠든 영혼이 나와 노니는 곳이라는 뜻이다. 혼유석은 둥근 북을 닮은 고석(鼓石) 4개가 받치고 있어 무거운 돌을 공중에 띄운 듯한 느낌이다. 그리고 조선 왕릉에서는 고석마다 잡귀를 막는 귀면(鬼面)을 새겨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호릉각(護陵閣)과 편액 

출처 : 무지개빛 사찰이야기
글쓴이 : 무지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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