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성[수성]나씨

[스크랩] 효도란 무엇인가

미르뫼 2014. 9. 11. 23:00

 

  

1. 효도란

○ 전통시대에서는 효를 '만덕(萬德)의 근원이요, 백행(百行)의 원천'으로 보고 있다. 모든 행동의 근본이 효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논어>에서는 어버이를 잘 섬긴 다음이라야 유교의 중심 사상인 '인(仁)'을 이룰 수 있다고 하였다.

공자와 그의 제자 증삼의 문답 중에서 효에 관한 구절들을 추려 기록하여 만든 <효경>에서 공자는 증자에게 이르기를, 효의 시작을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 : 사람의 몸과 머리털과 피부, 곧 몸의 전체는 모두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이것을 손상시키지 않음)'라고 했다.

공자는 효를 어버이를 공경하는 데에서 시작하여, 다음에는 나라에 충성하고, 후세에 이름을 날려 어버이를 드러나게 함이 효의 끝이라고 했다. '효'가 자연스럽게 '충(忠)'으로 이어지고, '입신(立身)'으로 끝맺게 되는 것인데, 이것을 '군자의 길'이라 했다.

 

다음은 <효경>에 있는 내용들이다.

- 어버이를 사랑하는 자는 감히 남을 미워하지 않는다. 어버이를 공경하는 자는 감히 남을 업신여기지 않는다.

- 아버지를 섬기는 것을 근본으로 하여 어머니를 섬기되 사랑하는 마음은 같아야 한다. 아버지를 섬기는 것을 근본으로 하여 임금을 섬기되 공경하는 마음은 같아야 한다. 어머니에게서는 그 사랑하는 마음을 취하고, 임금에게서는 그 공경하는 마음을 취하는 것이니, 이 두 가지를 겸한 것이 아버지이니라. 그러므로 효로써 임금을 섬기면 곧 충(忠)이 되는 것이요, 공경하는 마음으로써 윗사람을 섬기면 곧 순(順)이 되느니라.

- 효란 하늘의 법도이며, 땅의 의리이고, 백성의 행실이다. 하늘과 땅의 법도가 있으니, 백성은 그것을 본받아야 한다. 하늘의 밝음을 본받고 땅의 이점을 근거로 하여 천하를 순(順)하게 하는 것이다. 그 가르침은 엄격하지 않더라도 이루어지며, 그 정치는 준엄하지 않더라도 다스려지는 것이다.

- 하늘과 땅이 낳은 것 중에서 사람이 가장 귀하고, 사람의 행실에 있어서는 효보다 큰 것이 없다.

- 그 어버이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자는 덕(德)에 어긋난 것이고, 그 어버이를 공경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을 공경하는 자는 예(禮)에 어긋난 것이다.

- 어버이를 섬기는 자는 윗자리에 있어도 교만하지 아니하고, 아랫자리에 있어도 어지럽히지 아니하며, 많은 사람 중에 있어도 다투지 않는다. 윗자리에 있으면서 교만하면 곧 망할 것이요, 아랫자리에 있으면서 어지럽히면 형벌을 받을 것이요, 많은 사람 중에 있어도 다투면 상처를 입을 것이니라.

이 세 가지 일을 없애지 않으면 비록 날마다 소·양·돼지의 고기로써 봉양한다 해도 오히려 불효가 된다.

- 다섯 가지 형벌의 종류가 3천 가지나 되지만, 그 죄에 있어서 불효보다 큰 것은 없다.

한편 , <효경>에서 공자는 효자의 다섯 가지 도리를 다음과 같이 밝혀놓고 있다.

· 어버이를 섬김에 있어 부모 슬하에 있을 때는 그 공경하는 마음을 다하라.

· 봉양을 하는 데 있어서는 어버이가 그 즐거움을 다하도록 하라.

· 어버이가 병이 났을 때는 그 근심을 다하라.

· 어버이가 죽으면 그 슬픔을 다하라.

· 제사 지낼 때에는 그 엄숙한 마음을 다하라.

세 가지 도리는

첫째, 부모가 살아 계실 때에 정성껏 봉양하고,

둘째, 부모가 돌아가시면 상례(喪禮)를 예법에 따라 치를 것이며,

셋째, 부모의 제사를 정성껏 모시는 일이다.

세 가지 효는,

첫째, 어버이를 공경하여 높이고,

둘째, 어버이를 욕되게 하지 않으며,

셋째, 어버이를 모실 때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여 드리는 일이다.

 

다음의 글들은 모두 <예기>에 기록된 글이다.

- 무릇 남의 자식이 되어 부모를 섬기는 예는 겨울에는 따뜻하게 해 드리고, 여름에는 서늘하게 해 드린다. 밤에는 자리를 펴서 편안히 쉬게 해 드리고, 아침에는 문안한다. 벗 사이에서는 언제나 친목을 도모해서 다투지 않는다. 부모의 마음을 편안케 하기 위해서이다.

- 사람의 자식된 자는 나갈 때 반드시 부모에게 가는 곳을 알려야 한다. 돌아왔을 때에는 반드시 부모를 뵙고 인사를 드리되, 그 안부를 눈여겨 본다.

- 효자는 어두운 곳에서 일에 종사하지 않으며, 위태로운 곳에 오르지 않는다. 어두운 곳에서 일에 종사하면 남의 의심을 받기 쉽고, 위태로운 곳에 오르면 몸을 다치기 쉽기 때문이다.

- 부모가 병중에 있을 때 관자(冠者 : 머리에 관을 쓴 자, 즉 20세 이상인 사람)는 머리를 빗질하지 않고, 길을 걸을 때는 달리지 않는다. 농담의 말을 하지 않고, 가무(歌舞)를 삼간다. 고기를 먹어도 입맛을 변하기에 이르지 않고, 술을 마셔도 용모를 변하기에 이르지 않는다. 웃어도 잇몸을 드러내기에 이르지 않고, 성내도 욕하기에 이르지 않는다. 부모의 병이 나으면, 다시 평상시로 돌아간다.

- 아들이 어버이를 섬김에 있어 세 번 간해서(부모님에게 허물이 있을 경우) 듣지 않을 때에는, 눈물을 흘리며 이를 따른다.

- 부모에게 허물이 있을 때에는, 먼저 마음을 잔잔히 하고, 얼굴빛을 부드럽게 하라. 그런 후 부드러운 목소리로 간해야만 한다. 만일 받아들이지 않을 때에는 일어나서 공손히 절하고 물러나와 계속 효성을 다하라. 부모의 기분이 풀려 기뻐할 때를 기다렸다가 다시 간해야 한다. 왜냐하면 부모에게 죄가 생김을 방치하는 것은 효자의 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의 허물은 은근하고 끈기있게 간하도록 하라. 이때 부모가 성내고 기뻐하지 않아 자기의 종아리를 때려 피가 흐를지라도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말라. 달게 받고 묵묵히 일어나서 계속 효성으로 대하라

공자의 가르침을 받은 증자는 효행으로 유명한데, 그는 '다섯 가지 불효(五不孝)'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집에 있지 않고 함부로 나돌아다니는 버릇

·나라에 충성하지 못하는 것

·어른들을 공경하지 못하는 태도

·벗으로부터 신의를 잃어버리는 태도

·전쟁터에서 용맹스러움을 발휘하지 못하는 행위

맹자는 공자의 '인(仁)'사상을 발전시켜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하였는데, 그 역시 보기 드문 효자였다고 한다. 맹자가 말한 다섯 가지의 불효는 다음과 같다.

·게을러서 부모님 받드는 일을 소홀하게 하는 것

·도박과 술을 좋아하여 부모님 받드는 일을 소홀하게 하는 것

·돈에 너무 눈이 어둡고, 제 아내과 제 자식만을 위하고 부모님을 외면하는 것

·눈과 귀의 만족에만 급급하여 부모님을 욕되게 하는 것

·싸움질을 좋아하거나 성질이 나빠 부모님을 근심되게 하는 것

 

2. 효와 관련된 말들

 

요즈음은 부모에게 물질로써 봉양함을 효도라고 한다. 그러나 개나 말도 집에 두고 먹이지않는가. 공경하는 마음이 여기에 따르지 않는다면 무엇으로써 구별하랴(今之孝者是謂能養 至於犬馬皆能有養 不敬何而別乎) - 공자

대효(大孝)란 지효(至孝)를 말함이다. 한 사람이 능히 한 나라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또 능히 천하의 사람들을 느끼도록 하나니, 천하의 지성(至誠)이 아니면 어찌 이에 이르리오. 사람이 느끼면 하늘도 또한 느끼느니라. - 동학(천도교)의 팔리훈강령(八理訓綱領)

효는 모든 덕행의 근본이며 또한 교화의 근원이다. - 공자

신체발부 수지부모(몸과 몸에 있는 모든 것이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라 하여 상해하거나 훼손시키지 않음이 효의 시작이라 가르침) - 유교

사람의 행위 가운데 효보다 큰 것이 없고, 어버이를 공경하는 것은 그를 하느님 옆에 모시는 것보다 큰 것이 없다. -

 

효의 세가지 조건

1. 부모를 존경하는 것

2. 부모와 가족을 욕되게 하지 않는 것

3. 부모에게 좋은 음식ㆍ의복 및 따뜻한 밥을 해드려 편안히 모시는 것 -

우리의 신체는 머리털에서 살갗에 이르기까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감히 손상 할 수 없음이 효의 비롯이니라. -

효라는 것은 행인(行仁)의 근본이다. - 공자

무릇 효가 덕의 근본이다. 모든 가르침이 여기에서 시작된다. -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이 자(慈)이고, 자녀가 부모를 잘 받드는 것이 효 - 퇴계 이황

효도는 어버이를 섬기는 일에서 시작하여 임금을 섬기는 것이 중간 단계이며,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으로 완성된다. -

효의 시종(始終) 사람의 몸뚱이와 머리털과 피부는 모두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라, 감히 이것을 상하게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효도의 시작이며, 감히 이것을 세워 도를 행하고 뒷세상에 드날려서 부모를 빛나게 하는 것은 효도의 마침이니라. -

개종명의장(開宗明誼章)에서 효란 덕의 근본이요 교화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생하는 것 (夫孝 德之本也 敎之所以生也) -

어버이를 섬기는 정성에 인하여 그로서 하늘을 받드는 도리를 밝힌다. -

어버이가 살아 계시면 뜻을 살피고, 돌아가시면 생전의 업적을 본받아 3년간을 고치지 않고 좇는 것이 효이다. -

효도란 하늘의 떳떳한 것이며, 땅의 옳은 것이며 백성의 행실이다. 이는 하늘과 땅의 떳떳한 것을 백성들이 본받은 것이니, 하늘의 밝은 것을 본받고 땅의 옳은 것을 좇아서 이것으로 천하를 순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것 때문에 그 가르침은 엄숙하지 않고서도 이루어지며, 그 정사(政事)는 엄하지 않고서도 다스려 지는 것이다. -

 

3. 불효의 일화

일화 - 고려 인종때에 충주지방에 살던 유정(劉挺)이라는 불효막심한 자가 그의 부친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고려왕실에서는 임금이 그 대책을 논의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그 지방을 다스리던 관리에게는 교화를 잘못했다는 책임을 추궁하여 이를 파면하고, 죄인을 가르친 일이 있는 서당의 훈장에게도 응분의 책임을 물었다. 그리고 죄인 당사자는 즉각 사형에 처하고 그 집을 헐어버리고 그 집터에는 웅덩이를 깊이 파서 다시는 집을 짓지 못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임금 자신도 근신하는 뜻으로 일정기간 술과 음악을 금했다는 기록이 있다.)

- 고려 시대에는 불효자를 처벌하는 법률만은 매우 엄하게 실천하여 만일 불효를 한 죄인으로서 권력의 비호나 그 밖의 어떤 사정으로 요행이 처벌을 모면했다 하더라도 후일 죄상이 드러나는 날에는 사직 당국의 계속적인 탄핵, 그리고 백성들의 추궁을 면할 수 없었으며, 일단 불효자라 낙인이 찍히고 나면, 당사자는 물론 그 죄는 자손에게까지 연루(連類)되어 사회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는 자손대대로 봉쇄당하고 말았다.

조선시대에는 불효에 대한 처벌은 <형률> 인명(人命)편에서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 조부모나 부모를 모살(謀殺)하는 행위. 이러한 행위를 착수하였을 경우에는 비록 미수에 그쳤다 하더라도 모두 목을 벤다. 이미 죽었을 때는 능지처사(陵遲處死 : 죄인을 산채로 묶어 놓고 다리를 끊어 내고 팔을 끊어 내고 목을 끊어 내어 죽이는 것인데 팔과 다리나 머리를 떼어 내는 까닭에 지해-支解-라고도 부르는 가장 무서운 형벌)한다.

- 조부모나 부모를 구타하는 행위. 만일 구타하여 치사하였을 때는 능지처사한다. 과실로 인하여 치사케 하였을 때는 장형(杖刑 : 대개 버드나무로 만든 곤장으로 때리는 것) 100과 유형(流刑 : 먼 곳으로 귀양을 보내는 것) 3,000리에 처한다. 과실로 인하여 상해하였을 때는 장형 100과 도형(徒刑 : 오늘날의 징역과 유사) 3년에 처한다.

- 조부모나 부모를 꾸짖는 행위. 교수(絞首 : 굵은 끈으로 목을 졸라 죽이는 형벌)에 처한다. 다만 부모가 고소하였을 때에만 처벌한다.

- 조부모나 부모를 살해하는 행위는 불효행위이고 이러한 죄를 가리켜 강상(綱常)을 파괴하는 죄라고 한다. 조선시대에도 부모를 죽이는 사건이 일어나면 범인을 엄벌하는 한편 그 범인이 살던 집을 헐어내고 그 자리에 연못을 팠으며, 읍호(邑號)를 강등하고 수령을 파면하기도 하였다.

- 이이의 사창계약속(社倉契約束)에는 부모에게 불효하거나, 부모를 구타하거나, 부모를 떠밀어 넘어뜨리는 행위를 대과악(大過惡)이라고 하여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계(契)에서는 범인은 관청에 고발하여 처벌을 받게 하고 그 후에 계에서 쫓아내고, 물이나 불을 나누어주지 않고, 말(對話)도 주고받지 않도록 하였다.

그리고 부모에게 낯을 붉히며 대드는 행위, 순종하지 않는 행위, 봉양하지 않는 행위, 상중에 애통해 하지 않고 술을 마시는 행위, 제사를 엄숙하게 지내지 않는 행위는 그 범인을 불러다가 많은 사람 앞에서 꾸짖고 뜰에 세워 놓거나 따로 앉혀 놓았다. 그리고 부모 앞에서 단정하게 앉지 않고 걸터앉거나 소나 말을 타고 가다가 내리지 않는 행위도 그 사람을 여러 사람 앞에서 꾸짖도록 하였다.

4. 효의 실천

 

한 번 가면 돌아올 수 없는 어버이인 것을-아들이 내내 봉양하려 한데도 어버이는 기다리지 않나니, 그러므로 돌아가신 뒤에 소를 잡아 제사지냄이 차라리 생존해 계실 때 닭ㆍ돼지로 봉양해 드림만 같지 못한 것, 처음에 내가 관리가 되어 녹(祿)이 여섯 말 네 되도 못 되었으나 오히려 기뻐한 것은 그 녹이 많다고 생각되어서가 아니라, 그것으로써 어버이를 봉양할 수 있음을 즐거워했기 때문이다.

어버이께서 돌아가신 후 내가 남쪽 초나라에 가서 높은 벼슬을 받았음에도 오히려 북쪽을 향해 눈물을 흘린 것도 그 벼슬이 천(賤)하다고 생각되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나의 어버이에 게는 미칠 수 없음을 슬퍼한 때문이다. - 증삼이 부모를 여읜 뒤에

제가 부모를 섬길 적에는 백리를 밖에 가서 쌀을 가져다 봉양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부모가죽고 저는 초나라 대부(大夫)가 되어 곡식 만석을 쌓아놓고 먹게 되었사오니, 이제 와서는 쌀을 져다가 효도를 하고 싶어도 되지 않는군요. 참으로 한스러운 일입니다. -

너희는 부모에게 효도해야 하느니라. 부모가 아니면 사람들이 어떻게 세상에 태어날 수 있으랴? 부모가 있으므로 우주의 근본이 되는 이몸이 있으며, 사람의 도리가 있으니, 이 모두가 부모의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랴? 그러므로 부모가 살아 계실 때는 지성으로 봉양하고 부모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영가를 잘 천도하여 왕생극락을 발원해야 하느니라.

또 자신의 부모가 아니더라도 병든 노인이나 나이 많은 노인을 대할 때, 마치 내 부모를 대 하듯 공경해야 하느니라. 그렇게 할 때, 불ㆍ법ㆍ승삼보와 천인, 용이나 모든 선신들이 항상 보호하며, 힘든 지경을 당할지라도 세세생생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느니라. 그렇게 해야만 사람으로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수명 또한 길어지고 자 손대대로 많은 복을 누리며 부귀하게 살 수 있다. 이 가르침을 어기고 부모에게 불효하는 자는 그 자식이 화를 받을 것이며, 늙고 병약해지면 버림받으리라.  -

부모생전에는 예를 다하여 모시고, 돌아가시면 예로써 장사 지내며, 제사지낼 때는 예를 어기지 않고 예를 다하는 것이다. -

효자는 부모를 모심에 있어 (부모님께서) 기거하실 때에는 있는 힘을 다하여 공경하고, 봉양할 때에는 최선을 다하여 즐겁게 해드리며, 병이 드시면 온 마음으로 근심하고, 부모님께서돌아가시면 그 슬픔을 다하며, 제사를 지낼 때에는 가장 엄숙하게 한다. 이상의 다섯 가지를 갖춘 다음에야 비로소 그 부모님을 모실 수 있는 것이다. - 공자

부모의 잘못을 아는 듯 모르는 듯 여쭈어 가면서 그래서는 안될 뜻만을 보이며, 공경하는마음에 틈이 나서는 안된다. 고되더라도 원망해서는 안되는 법이다. - 공자

부모가 사랑하시거든 기뻐하면서 잊지 않아야 하며, 부모가 미워하시더라도 노력하면서 원망하지 않아야 한다. - 맹자

부모를 섬기되 여러 번 간해도 뜻을 쫓지 않거든 또 공경함을 어기지 않고, 수고로워도 원망치 않으며, 또 공경하고 효도해서 부모가 기뻐하시거든 다시 간해서 제 정성을 쌓아 부모를 감동시켜 자기의 간하는 말을 쫓도록 한 뒤에 그만두어야 한다. -

자식이 부모를 섬김에 있어 거처할 때는 그 공경하는 마음을 다하고, 효양(孝養)하는 데는부모가 즐거워하도록 하고, 부모가 병이 있으면 몹시 근심하고, 또 돌아가시면 슬픔을 다하고, 제사지낼  때에는 엄숙한 마음을 다하는 것이니, 이러한 다섯 가지가 갖추어진 뒤에라야 부모를 잘 섬겼다고 말할 수 있다. - 공자

효도는 공경하는 일을 첫째로 한다. - 율곡 이이

공자는 말했다. '오늘날의 효라는 것은 (물질적으로만) 잘 봉양하는 것만을 일컫는다. 그러나 개나 말 따위도 모두 먹여 기르는 것이니, 공경함이 없다면 무엇을 해 구분할 수 있겠는가? -<논어> 공자

사랑이란 부모를 봉양하여 즐겁게 해 주는 것이요, 공경이란 부모를 지극한 공경으로 봉양하는 것이다. 원래 사람의 인정 속에는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나, 이 사랑하는 마음을 부모에게 베푸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 증자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로 인하여 즐거울 것이니라.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 잠언 23장 24절, 25절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 골로새 3장 20절

자녀들아 너의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 라. 이것이 약속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내 생명이 길리라. - 출애굽기 20장 12절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 마태복음 19장 19절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 레위기 19장 3절

처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써 부모를 섬기면 그 효성이 극진할 것이요, 보귀를 보전하려는마음으로써 임금을 받들면 충성 아닌 것이 없을 것이요, 남을 꾸짖는 마음으로써 자기를 꾸짖는다면 허물이 적을 것이요, 자기를 용서하는 마음으로서 남을 용서한다면 사귐을 온전히 할 수 있다. -

엄격한 아버지는 효자를 낳고, 엄격한 어머니는 효녀를 낳는다. -

부모의 병에 약을 달여 드림은 효도이겠으나, 자기의 팔ㆍ다리를 훼손해서 드림이 효라는말은 듣지 못하였다. 이런 짓이 만약 의로운 일이라면 어찌 성현들이 앞장서서 하지 않았겠가.  이런 일을 하다가 불행히도 자기가 죽기라도 한다면, 몸을 훼손하고 후손을 못갖는 죄가 돌아오는 것이 된다. 어찌 이런 일에 국가가 그 가문을 표창해서 나타내게 할 수 있으리오. - 한퇴지(韓退之)

그렇다고 해도 거리바닥과 시골의 고루한 사람들이 학술과 예의는 모르지마는 능히 자기 몸을 잊고 어버이를 생각함이 성심(誠心)에서 나와서 하는 일이니 또한 칭송한만 하다. - 송기

불의에 당면했을 때에는 아들은 아버지에게 또 신하는 임금에게 간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불의 앞에서는 간쟁해야 한다. 아버지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는 것을 어찌 효라고 하겠는가. -

사전에는 간하되, 사후에 부모의 잘못을 책망해서는 안된다. 부모의 뜻을 따르지 않은 경우에도 부모를 한결같이 공경하고, 또 나아가 마음 고생을 하더라도 부모를 원망해서는 안된다. -

세 번 간을 올려도 부모가 들어주지 않으면, 소리내어 울며 따르라. -

집에 들어가서는 효도하고 나아가서는 충성하라는 것은 공자의 말씀이요, 의도적으로 함이없는(無爲) 일에 처하고 말씀이 없는(不言) 가운데 가르침을 행하라는 것은 노자의 주장이며,어떠한 죄라도 범하지 않고 모든 착한 일을 힘써 행하라는 것은 석가여래의 교지이다. -

어버이에게 효도하고자 하면……일마다 지성(至誠) 아닌 것이 없게하여 모두 즐거웁고 틈이 없게 하며, 간사하고 이간질하는 것은 엄금하고, 화순한 안색으로 극히 조심해 공손하면 정신이 서로 융합하고 기맥이 서로 통하게 하며……오직 귀신을 감동하게 하는 것으로 마음을 삼아 효친의 실(實)을 다해야 할 것이다. -

무릇 사람된 자로 어버이에게 마땅히 효도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으되, 실제로 효도를 하는 이가 매우 드문 것은 어버이의 은혜를 깊이 알지 못하는 까닭이다……. 날마다 밝기 전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머리를 빗고 의관을 갖춘 후에 부모의 침소에 나아가 기색을 낮추고 음성을 부드럽게 하여 덥고 추운 것에 안부를 여쭙고, 날이 저물어 어두워지면 부모의 침소에 가서 이부자리를 보아 드리고 덥고 추운 것을 살피며, 곁에서 모실 때에는 항상 화평하고 기쁜 안색으로 공경스럽게 응대하여 매사 성의를 극진히 하여 받들어 모시되 출입할 때에는 반드시 절하고 말씀드려야 한다. -

어버이를 섬기는 이는 모름지기 공경을 극진히 하여 어른의 명을 순순히 좇는 예를 다하고,즐거움을 다하여 음식의 봉양을 드리고, 병환에는 극진한 근심으로 의약의 치료를 다하고, 상사에는 지극한 슬픔으로 마지막 이별의 도를 다할 것이요, 제사의 행사에는 엄숙함으로 추모의 성의를 다하여야 할 것이다. -

사후의 효 효자는 어버이의 돌아가셔 초상을 치름에 있어 울음으로 슬퍼하고……아름다운 옷을 입지 아니하며 풍류를 즐기지 아니하며 맛있는 음식을 달게 먹지 아니 하나니, 이는 슬퍼하고 서러워하는 정이다. -

 

5. 효의 사례

효녀 지은(知恩)

효녀 지은은 한기부의 백성 연권의 딸로 성품이 지극히 효성스러웠다. 처녀 시절에 아버지를 여의고 혼자 어머니를 봉양하여 나이 32세가 되어도 시집을 가지 않고 밤낮 어머니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어머니를 봉양할 것이 없어서 혹은 품팔이도 하고, 혹은 동냥을 하며 밥을 빌어다가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날이 갈수록 피곤함을 견딜 수 없어서 부자집에 가서 몸을 팔아 종이 되기를 요청하여 쌀 10여 석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하여 해가 지도록 그 부자집에 다니면서 일을 해주고 밤이면 돌아와서 밥을 지어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이렇게 한지 3, 4일 뒤에 그의 어머니가 딸에게 이르기를 '전에는 밥이 궂어도 맛이 좋더니, 요즈음에는 밥은 비록 좋으나 맛이 전과 같지 않으며 마치 뱃속을 칼로 찌르는 것 같으니 이것이 웬일이냐?' 하였다.

딸이 사실대로 고하니 어머니가 말하기를 '나 때문에 너로 하여금 종이 되게 하였으니, 차라리 빨리 죽는 것만 같지 못하다' 하고 목을 놓아 크게 울고 딸도 울어 길가던 사람들을 애처롭게 하였다. 이 때 화랑 효종랑이 지나다가 그 모습을 보고 돌아와서 부모에게 청하여 자기 집 곡식 백석과 옷을 실어다 주고, 또 지은을 종으로 산 주인에게 몸값을 보상하여 지은을 양인(良人)으로 돌려 놓았으며, 화랑의 무리 몇 천 명이 각각 곡식 한 섬씩 기증하였다.

왕이 이 말을 듣고 역시 벼 500석과 집 한 채를 주고 일체 부역을 면제하여 주는 동시에 곡식이 많아서 도둑이 들까 염려하여 관리에게 병사를 보내 번갈아 지키도록 명하였다. 그리고 그 마을을 표창하여 효양방(孝養坊)이라고 하고, 이어 표문(表文)을 지어 그의 아름다운 행실은 당나라의 덕화가 미쳤기 때문이라 하였다. 효종랑은 당시 셋째 재상(宰相)의 서발한 김인경의 아들이었는데, 그의 어릴 때 이름이 화달(化達)이었다. 왕이 생각하기를 나이는 비록 어리나 어른처럼 보인다하여 곧 왕의 형인 헌강왕의 딸로서 아내를 삼게 하였다.

-<삼국사기>

효자가 된 강도

옛날 어느 곳에 한 효자 내외가, 외로운 어머니를 모시고 어렵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 효자는 얼굴이 차돌같이 희고 깨끗하여, 한번 본 사람이면 웬만해서 잊지 않았다.효자 어머니는 아들이 언제나 늦게까지 밭에서 일을 하다가 땅거미가 어둑어둑해서야 돌아오는 것을 보고,

"부모라는 게 널 낳기만 했지 잘 살도록 남겨준 게 없으니 미안하구나."

하고 혀를 차며 탄식했으며, 그 아들은 그럴 때마다 천만의 말씀이라는 듯,

"어머니, 그래도 저에겐 얼룩이가 있지 않습니까?"

하고 외양간의 소를 가리키곤 했다. 늙어 힘을 제대로 못 쓰기는 해도, 그 황소는 효자 내외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일한 재산이었다.

가을이 되자 효자는 걱정이 태산같았다. 계속된 가뭄으로 금년 농사가 엉망이 되어 먹고 사는 일조차 빠듯한데, 아버님 제사가 바싹바싹 다가오고 있으니 말이다. 집안에 돈이 될만한 물건이 없나 하고 둘러보았으나, 신통한 것이 하나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어머니가 기침병에 걸렸을 대 약을 지어 대느라 값나갈 만한 물건을 닥치는 대로 팔아치운 게 바로 지난 봄이었기 때문이었다. 썰렁한 방 안에 찬바람만 돌았다.

"휴...."

한숨만 쉬고 있는 효자 곁으로 아내가 오더니, 무슨 말을 꺼내려다 말고 머뭇거렸다.

효자가 물었다.

"당신 새삼스럽게 부끄러워하는 거요? 할말이 있으면 하구려. 얼굴에 할말이 있다고 쓰여 있구려."

"실은, 당신이 아버님 제삿상에 올릴 제사 물건이 없어 애타하는 거 같아서....."

"그거야 당신도 뻔히 알고 있는 일 아니요?"

"그래서 생각한 건데, 얼룩이를 내다 팝시다."

"얼룩이를? 그건 아버님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뿐인 유산인데, 어떻게....."

"그렇긴 하지만, 다른 일도 아니고 아버님 제사를 위해 내다 파는 거니까, 그렇게 죄스러울 건 없잖아요?"

"듣고 보니 당신 말도 일리가 있구려. 내 어머니한테 가서 여쭈어 보리다."

이윽고 어머니의 허락이 떨어지자, 효자는 아끼던 얼룩이를 끌고 장으로 갔다. 효자로서는 무엇보다 귀중한 황소였지만, 팔려고 하니 늙어 쓸모가 없다면서 사가려는 사람이 별로 나타나지 않았다.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겨우 흥정이 이루어진 효자는, 약간의 돈을 받고 소를 팔았다. 장에서 마을로 오자면 용고개를 넘어야 했다. 진작 흥정이 있었더라면 여럿이서 같이 고개를 넘을 수 있었을 텐데, 뒤늦게 소가 팔렸기 때문에 효자는 혼자 가파른 용고개를 넘어오면서 속으로 근심을 했다.

"요즘 이 용고개에 험하게 생긴 손님이 목을 지키고 있다던데, 무사할 지 모르겠군."

얼굴이 험한 손님이란, 장에 다녀오는 장꾼을 노리는 강도를 말한다. 말이 씨가 된다더니, 효자의 걱정은 사실이 되어, 고갯마루에서 송충이 눈썹을 한 강도를 만났다. 그이 손에는 번쩍번쩍하는 칼이 쥐어져 있었다.

"이봐, 이 고개에 얼굴 험상궂은 손님 있다는 이야기 들었겠지? 내가 바로 그 장본인이다. 다치기 전에 품속에 감춘 돈을 순순히 내놓게나."

효자는 양 손으로 돈이 든 괴춤을 감싸며 애원을 했다.

"제가 돈을 얼마 가지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돈은 아버님 제가 때 제사 물건을 사기 위해 전 재산인 얼룩이를 판, 저로서는 생명과 같은 것입니다. 그냥 보내 주십시오."

"이놈아, 내 상판대기를 봐라. 인정 베풀고 사정 봐 주게 생겼는지. 누구 앞이라고 허튼수작하고 있느냐? 어서 냉큼 괴춤의 돈을 내놓아라."

효자와 강도가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때, 다행히 한 때의 사람이 고개를 올라오고 있었다. 그것도 그냥 행인이 아니라, 장꾼을 터는 강도를 잡으러 나선 포졸들이었다.포졸들은 두 사람이 싸울 듯한 자세로 서로 마주보고 있는게 수상한지, 멀리서부터 큰소리로 물었다.

"이 깊은 산골에서 뭣들 하고 있느냐?"

이렇게 되자 궁지에 몰린 건 송충이 눈썹의 강도 쪽이다. 그는 얼른 칼을 뒤로 감추기는 했으나, 효자가 '이 사람이 바로 강도요.'하고 한 마디만하면 끝이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눈을 우락부락하게 굴리던 강도는 하얗게 질려 효자의 입만 쳐다보았다. 효자는 문득 강도가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얼른 이렇게 대꾸했다.

"포졸 어른들, 수고가 많습니다. 어릴 때 헤어진 친구를 이 고개에서 만나, 시간 가는줄 모르게 옛날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포졸이 바싹 가까이 와서는 두 사람을 번갈아 훑어보더니, 효자에게 물었다.

"여보시오, 저 사람은 얼굴이 여간 사납게 생긴 게 아닌데 정말 댁 친구란 말이요?"

효자는 시치미를 뚝 떼고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 험상궂은 것으로 따지자면 포졸 어른도 별로 빠지지 않겠는데, 남의 친구 보고 사납게 생겼느니 어떻느니 흉보지 마시오.

생김새는 저래도 속마음은 비단결 같다오."

"그렇다면 실례했소이다."

포졸들이 고개 저쪽으로 사라지자, 꼼짝없이 붙잡혀 가는 줄만 알았던 강도는 효자 앞에 무릎을 꿇으며 눈물을 흘렸다.

"형씨가 감싸준 덕분에 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이젠 손을 씻고 새사람이 되겠습니다."

효자는 환화게 웃으며 강도의 손을 잡았다.

"잘 생각하셨소. 태어날 때부터 악한 사람이 어디 있겠소? 마음 한번 잘못 먹으면 그렇게되는 것이오. 그러나 또 댁처럼 부끄러운 죄를 훌훌 털어 버리면 다시 새사람이 되는 거 아니겠소? 부디 선하게 잘 사시오."

용고개의 험상궂은 손님인 강도는 효자에게 세 번, 네 번 절을 하고는 팔뚝으로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내려갔다.

보름이 지났다.

효자는 그 날도 밭에 나가 늦게까지 김을 매다가 서산마루가 노을에 젖는 것을 보며 집으로 돌아오는데, 사립문 앞에 낯 모르는 노인이 마당 안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낯선 노인은 효자가 보름 전에 장에 내다 판 얼룩이 고삐를 쥐고 있는 것이었다.

"뉘신지요?"

효자가 이렇게 말을 걸자 낯선 노인은 효자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더니,

"아, 역시 댁이었구려, 댁의 그 차돌같이 흰 얼굴을 보니, 대번에 알겠구려."

하고는 반가워했다.

그러고보니, 효자도 상대가 누군지 기억이 났다.

"그날 제 소를 사가신 분 아닙니까? 혹시 소한테 무슨 문제가 있던가요? 제가 팔 때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늙어 힘은 못쓰나

병든 소는 아니라구요."

"내가 댁을 만나러 온 건 그런 걸 따지려고 온 게 아닙니다. 이 소를 댁에게 도로 돌려드리려고 온 것이오."

"얼룩이를 제게 돌려준다고요? 저는 그 돈으로 이미 부친 제사를 지낸걸요?"

"아니, 돈을 돌려받자는 게 아니고, 은혜에 보답하자는 거지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소를 판 날 용고개를 넘다가 고갯마루에서 강도를 만난 적이 있지요?"

"누가 그러던가요?"

"그 강도가 그럽디다."

효자가 영문을 몰라 멍한 표정으로 있자, 낯선 노인은 들어보라는 듯 손짓을 했다.

"내가 바로 댁이 그 고개에서 만난 강도의 아비되는 사람이라오. 그날 댁의 소를 몰고 집으로 와보니, 아들이 무슨 생각에 잠겨 한숨만 쉬고 있습니다. 하도 손버릇이 나쁘고 남의 물건 훔치기를 떡먹듯이 하는 녀석이라, 집에서 내놓은 자식입지요. 그런데 어떻게 된 셈인지 그 이튿날부터 아들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술, 노름 다 끊고 집안 일을 거들더라니까요. 처음에는 무슨 꿍꿍이속이 있겠거니 하고 하는 대로 내버려두었는데, 오늘까지 보름째 변함이 없지 않겠습니까? 하도 신기하고 고맙고 대견해서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더니, 댁 만난 이야기를 하더군요. 아들이 포도청에 끌려가지 않도록 감싸준 것만도 고맙기 이를 데 없는 일이건만 새사람을 만들어 놓았으니, 어찌 은혜라고 하지 않을 수 있겠소. 이 소는 그런 뜻에서 본디 임자에게 돌려주는 것이니, 정성으로 생각하여 거절하지 마시오."

효자가 난처해하자, 그 노인은 덧붙여 한 가지 더 말했다.

"내 아들과 의형제를 맺어 형이 되어 주시오. 그리고 내가 머슴깨나 부리고 사는 처지이므로, 앞으로 제사 물건 떨어지면 얼룩이팔 생각하지 말고 내게 오시오. 내 기쁜 마음으로 내주리다."

 

어머니가 준 지혜

고구려 때 늙고 병든 사람을 땅 속 광에 두었다가 죽으면 그곳에 묻었다고 해서 생긴말인 고려장은, 실제로 그런 풍습이 있었는지 아니면 잘못 전해진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고려장은 또 고대의 무덤, 즉 돌로 만든 관이나 구워 만든 관에 시체를 담아 가운데 놓고 큰 돌로 뚜껑을 덮거나 나무로 담을 쌓은 고분을 속되게 부르는 말이기도 하다.어쨌든 고려장이 있었던 시대의 옛날 이야기이다.

그때 꽤나 높은 벼슬자리에 있는 한 신하가 있었다. 그는 청렴결백하여 나랏일을 잘 처리한 것은 물론이요, 그보다도 효성이 지극했다.

효자 신하는 어머니가 점점 늙어감에 따라 걱정이 되었다. 당시 나라에서는 부모가 예순 살이 넘으면 산에 움집을 파고 그곳에 내다 버리도록 했기 때문이다.

효자 신하는 자신이 벼슬 자리에 있는만큼 당연히 나라의 법을 지켜야 되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늙은 어머니를 산에 내다 버릴 수는 없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나라의 법인지라 그의 어머니조차,

"얘야, 이제 내 나이 예순이 넘었으니 어서 산에 버려다오. 잘 보지도 듣지도 못하니 송장이나 다를 바 없지 않느냐."

하며 고려장 보낼 것을 조르곤 했다. 그럴 때마다 효자 신하는 펄쩍 뛰며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 아무리 나라 법이 엄하다 해도 그런 못된 법에는 따를 수 없습니다."

"그러다가 들키면 저 아랫마을 효자처럼 너까지 생매장을 당하려고 그러느냐?"

"어머니를 위하다가 당하는 일이라면 그보다 더한 벌이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그러다가 네가 필경 큰일을 겪고 말지....."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아들을 걱정했다. 효자 신하는 궁리 끝에 뒤채에 어머니를 숨겨 놓고 고려장 지냈노라고 소문을 퍼뜨리기도 했다.

사실 마을과 조정에서도 그 신하의 효성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으므로, 예순이 다 된 노모를 어떻게 할까 유심히 살피고 있었는데, 그도 별수없이 어머니를 고려장 보냈다는 소문을 듣고는 모두들 코웃음을 쳤다.

"효자입네 하고 제법 남의 눈길을 끌더니, 예순이 되기다 무섭게 산에 내팽개쳐 버리는군."

"지금까지 효자 행세한 것으로 미루어서 제 어미를 고려장 보낼 때 울고불고할 줄 알았는데, 곡 소리 한 번 없이 뚝딱 해치웠어."

"그뿐이면 말도 안 하겠네. 제 어미 고려장 보낸 이후 그 위인의 안색이 훤해졌다니까. 귀찮은 짐을 덜었다는 양 말일세."

사실 어머니를 뒤채에 숨긴 이래 효자 신하는 마음이 편해져 누가 봐도 전보다 얼굴색이 밝았다. 늘 마음을 조이게 하던 근심거리를 감쪽같이 해결하였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효자는 혼자 쓸쓸히 있을 어머니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 날이 어두워지기만 하면 살그머니 뒤채로 가 몸이 불현한 어머니에게 밥을 떠멱여 주주며, 낮에 있었던 일을 하나도 빼지 않고 소상하게 들려 주었다.

"어머니, 오늘 낮에 말입니다....."

"또 소가 뒷걸음치다가 쥐잡은 이야기 하려고 그러냐?"

"아닙니다. 오늘은 조정에서 있었던 일을 말씀드리려고요."

"어떤 신하가 임금님 앞에서 방귀라도 뀌었냐?"

"그건 작년 일이구요. 이번엔 중국에서 사신이 왔습니다."

"또 무슨 트집 잡으러 온 게 분명해."

"맞습니다, 어머니. 이번에는 지혜겨룸을 하자고 왔습니다. 저희들이 문제를 내어 우리가 다 풀면 아무 말 않고 돌아가지만, 풀지 못하면 이런 못난 신하들이 나랏일을 돌보니 잘 될 리가 있겠느냐는 등 별의별 모욕을 다 주겠지요."

"그 사람들이 내놓은 문제가 뭐냐?"

"아직은 모르지요. 내일 모든 신하들이 모인 자리에서 문제 보따리를 풀어 놓겠지요."

'늦었으니 자자. 내일 저들이 내놓은 문제를 내게도 일러다오."

"알겠습니다."

이튿날 아침, 효자 신하가 궁에 들어가니 중국 사신이 높은 의자에 거만하게 앉아, 신하들이 모두 모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신하들의 표정은 화석처럼 굳어 있었다. 자리가 다 차자 이윽고 중국 사신은 쓸데없이 입맛을 쩝쩝 다시며 일동을 둘러보았다.

"모두 세 문제를 내겠소. 상의를 해서 내일까지 답을 가져 오도록 하시오."

그 날 밤, 어머니가 숨어 있는 뒤채로 온 효자 신하의 이마에는 주름이 잔뜩 잡혀 있었다.

"어머니, 오늘 중국 사신이 세 문제를 냈는데, 모두 지혜를 다 해 연구해보았지만 한 문제도 풀 수 없었습니다. 저들이 우리들을 보고 모두 새대가리라고 흉을 볼 생각을 하니 아득합니다."

"세 문제가 뭔지 내게 말해 보아라."

효자 신하는 한숨부터 토하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첫째 문제는, 호도알 만한 구슬이 하나 있는데, 그 속이 구불구불한 구멍으로 뚫려 있답니다. 그런데 나긋나긋한 가는 명주실로 한 쪽 구멍에서 뀌어 맞은 쪽 구멍으로 빠져나오게 하라는 것입니다. 구슬의 구멍이 똑바르게 뚫려 있다면 몰라도, 물뱀 허리처

럼 구불구불한 것을 어떻게 뀌라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구멍이 똑바로 뚫려 있다면야 애당초부터 문제가 되지 않지, 굽어 있으니까 문제가 되는 거지."

"어머니, 한가롭게 농담할 때가 아닙니다. 우리 조정이 망신을 당하느냐 아니면 저들의 콧대를 꺾느냐 하는 심각한 일입니다."

"얘야, 그거 어려운 일 아니다. 이렇게 하면 되지 않느냐?"

효자 신하는 어머니의 말을 다 듣고 나더니 제 이마를 탁 치며 외쳤다.

"아하,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왜 우리가 그걸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

"그래 다음 문제는 뭐냐?"

효자 신하는 그의 어머니가 혹시 다음 문제도 시원시원하게 풀어 낼지 모른다 싶어 신이 나서 떠들었다.

"둘째 문제는, 생김새와 크기가 똑같은 말이 있는데, 하나는 어미고 하나는 새끼랍니다. 말에 손가락 하나 대지 않고 어미와 새끼를 가려내라는 것입니다. 말은 이빨을 보면 나이를 금방 알 수 있지만 손가락 하나대지 않아야 된다니 그것 또한 아득합니다."

"이빨 보고 가려낸다면 애당초부터 문제가 되지 않지."

"어머니, 또 농담을 하시는 겁니까?"

"얘야, 그것도 어렵지 않다. 이렇게 하면 되지 않느냐?"

효자 신하는 또 전처럼 손으로 제 이마를 쳤다.

"맞습니다. 그렇게 하면 간단하네요. 그러면 어머니, 셋째 문제도 들어보세요. 이건 정말 까다로운 문제입니다."

"네겐 까다로울지 모르지만 내겐 아무것도 아닐 수 있으니 어서 말해 보아라."

"나뭇가지 하나로 백 가지 나물을 만들라는 겁니다. 이건 아무래도 저들이 억지 문제를 낸 것 같습니다."

효자 신하의 어머니는 피곤한지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시큰둥하게 말했다.

"얘야, 그것은 아니다. 이렇게 하면 되지 않겠느냐?"

효자 신하는 세 번째로 제 이마를 쳤다.

날이 밝기가 무섭게 효자 신하는 서둘러 궁으로 가 임금에게 자신이, 중국 사신이 내놓은 문제를 풀겠다고 했다. 임금은 그렇지 않아도 그 문제로 밤잠을 설쳤으므로,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반가워했다.

"경이 효자인 줄은 내 일찍 알았으나 총명함까지 겸했음은 미처 몰랐구료."

이윽고 효자 신하와 중국 사신은 서로 마주 앉았다. 중국 사신이 먼저 입을 열었다.

"자, 첫째 문제부터 풀어 보시오."

"그러지요."

효자 신하는, 구불구불한 구멍이 뚫린 호도알 만한 구슬을 집어 들더니 가만히 상 위에 놓았다. 그러고는 미리 준비해온 보따리를 풀으니, 웬 개미 한 마리가 기어 나왔다. 뭇 신하들은 혹시 효자 신하가 서투른 짓이나 하다가 망신을 당하는 게 아닌가 싶어 가슴을 조였다.

효자 신하는 아무 말 않고 개미의 허리에 가는 명주실을 매더니 구슬 한 쪽 구멍에 집어 넣었다. 조금 있더니 허리에 명주실을 맨 개미가 반대 쪽 구멍으로 기어 나왔다. 분명히 구슬 구멍을 꿰뚫은 셈이었다. 가슴을 조이며 구경하고 있던 신하들의 입에서는 환호성이 터졌고, 중국 사신의 입에서는 신음이 새어 나왔다.

"첫번째 문제는 용케 풀었구려. 그럼 다음 문제를 풀어 보시오. 이번에는 녹녹하지 않을 걸?"

중국 사신은 사람을 시켜 두 필의 말을 끌어오게 했다. 두 필의 말은 흡사 쌍동말이기나 한 것처럼, 크기며 생김새, 심지어 우는 소리까지 서로 닮았다.

"이 두 마리 중에 하나가 어미말이고 하나가 새끼말이오. 손가락 하나 건드리지 않고 어미와 새끼를 가려내시오."

효자 선비는 역시 준비해 온 두 번째 보다리를 풀었다. 거기에는 말이 좋아하는 마른풀이 가득 들어 있었다. 효자 선비는 마른풀을 보따리째 들고 두 필의 말 앞으로 갔다. 그러고는 먹으라는 손짓을 해보였다. 두 마리의 말은 굶주렸는지 얼른 마른풀에 입을 대고 코를 벌름거렸다. 그러다가 한 마리는 입맛을 다시며 슬그머니 뒤로 물러섰고, 남은 한 마리가 혀를 날름거리며 와작와작 먹기 시작했다.

얼마 후, 먼저 마른풀을 먹기 시작한 말은 배가 부른지, 그때부터는 이리저리 뒤적이기만 할 뿐 더 먹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제야 한 발 뒤로 물러섰던 말이 이제야 제 차례라는 듯 앞으로 나서더니 잘근잘근 풀을 먹기 시작했다. 그런 광경을 보고 있던 효자 선비가 중국 사신을 향해 자신있게 말했다.

"보셨겠지요? 먼저 풀을 먹은 말이 새끼말이고, 나중에 풀을 먹기 시작한 말이 어미였습니다. 어미말은 제 새끼부터 먼저 먹이를 먹게 하였던 것입니다."

중국 사신은 놀랐는지 효자 신하의 얼굴을 빤히 올려다보다가는 '이번에는 어림도 없을 걸?' 하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마지막 문제를 풀어 보시오. 나뭇가지 하나로 백 가지의 나물을 만드는 일 말이오."

효자 신하는 이번에도 준비해온 보따리를 풀더니 푹 삶은 흰 나뭇가지를 꺼냈다. 그러고는 갖은 양념을 뿌려 가며 손으로 서걱서걱 무쳤다.

"다 되었습니다. 이것이 백 가지 나물입니다."

그러자 중국 사신은 흥하고 코방귀를 뀌며,

"그것이 어째서 백 가지 나물이란 말이요? 한 가지밖에 안 되면서."

효자 신하는 씩 웃으며 대꾸를 했다.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시는군. 이게 바로 백 가지 나물이오."

"모르기는 누가 모른단 말이오. 그게 어떻게 백 가지 나물이란 말이오. 흰 가지로 무친 한 가지 나물밖에 더 되오?"

"흰 가지라고 하셨지요? 그 말 한번 잘 하셨소이다. 그러니까 백 가지가 아니고 무엇이오. 중국에서 오셨다는 사신께서 흰 백자도 모르신단 말씀이오."

"뭐라고? 흰 백 자, 흰 가지, 즉 백 가지라 그 말씀이군?"

"그렇소. 흰 가지나 백 가지나 같은 뜻의 말이 아니오."

"아이고, 못당하겠군. 졌소, 금년에는 우리가 졌소."

이렇게 하여 중국 사신은 코가 쑥 빠져 제 나라로 돌아가고, 그날 저녁 효자 신하를 중심으로 성대한 잔치가 벌어졌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 자리에서 임금이 효자 신하를 보고 물었다.

"경의 지혜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바이오. 그런데 그런 지혜가 어디서 나왔소?"

효자 신하는 임금이 그런 질문을 해주기를 속으로 바라고 있었기 때문에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나라의 법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임금은 물론이고 뭇 신하들도 효자 신하의 말뜻을 몰라 서로 멀뚱멀뚱 얼굴만 마주 보았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임금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나라 법을 어겼기 때문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요? 워낙 지혜가 깊은 경의 말이라 우리가 그 뜻을 얼른 알아들을 수가 없구려. 자세히 풀어서 설명을 해주시오."

효자 신하는 임금 앞에 꿇어 엎드려 눈물을 뚝뚝 흘렸다.

"나라의 법을 앞장 서 지켜야 할 신하된 자로서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신은 그 동안 예순이 넘은 어머니를 뒤채에 숨겨 놓고 모시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나라의 법을 어겼다는 거지요."

임금은 더 모르겠다는 듯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게 이번 지혜 겨루기하고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이요?"

"오늘 신이 중국 사신이 내놓은 세 가지 문제를 풀 수 있었던 것은, 제게 그런 지혜가 있어서가 아니고, 제 어머니께서 이렇게 이렇게 하면 된다고 제게 가르쳐 주었기 때문입니다. 전하, 신은 법을 어겼으므로 법대로 처단하여 주소서."

임금은 꿇어 엎드려 흐느끼는 효자 신하의 팔을 잡아 일으키며 인자하게 말했다.

"법대로 처단하라니 그건 말이 되지 않소. 경의 어머니의 지혜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영락없이 저들에게 모욕을 당했을 텐데, 그 위기를 모면하게 해주었으니 오히려 상을 내려야지요."

여기서 임금은 표정을 고치더니 여러 신하들을 보고 엄숙하게 선포하였다.

"모두 들으시오. 부모님을 고려장 보내는 나쁜 나라 법을 오늘부터 당장 없애도록 하시오. 생각해 보건대 젊은이는 힘이 있으니 지혜가 약하고, 노인은 힘은 없으나 지혜가 깊소. 그러므로 젊은이의 힘과 노인의 지혜를 합하여 나랏일을 펴나간다면 못할 일이 무엇이겠소. 이 효자 신하가 우리 모두에게 그 교훈을 준 것이오. 모두 효자 신하를 본받아서 부모를 지성껏 모십시다. 모두 우리를 위한 일이니까."

 

진정한 효를 깨우친 며느리

옛날 한 고을이 있었는데, 그 고을을 땅이 기름져, 가을걷이 철이 되면 같은 면적에서 다른 마을에 비해 배는 아니라 해도 거의 그만큼 수확을 하곤 했다. 그래서 이웃 마을에서는 늘 그 고을을 부러워했다.

그런데 이 고을에는 땅이 기름진 것 이상으로 자랑스러운 게 있었다. 그것은 매해 가을 그 고을의 아들, 딸, 며느리 중에서 가장 효성스러웠던 사람을 뽑아 표창을 하는 일이었다.

가을이 되자 올해에는 누가 효자, 효녀, 혹은 효부로 뽑힐까 하는 문제로 고을이 시끌시끌해졌다.

"올해는 누가 뭐래도 강첨지댁 며느리가 효부로 뽑힐 걸세."

"겉으로 보기에는 자네 말대로 강첨지댁 며느리가 으뜸 효부감이긴 하지만 손을 얹어봐야 알지."

"그거야 물론이지. 효바위가 알지 우리가 어떻게 제대로 가려내겠나?"

호롱불 밑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새끼를 꼬느라 분주히 손을 놀리는 머슴들도 올해의 효자, 효부 이야기로 입 또한 분주하다.

"이번 가을 효자는 감나무 집 더벅머리 총각이 뽑힐 게 불을 보듯이 뻔한 일이지?"

"글쎄, 이번에는 감나무 집 더먹머리 총각이 틀림없는 것 같지 만, 길고 짧은 건 손을얹어봐야 알지."

"우리가 아무리 누가 효자다, 누가 효녀다, 누가 효부다 하고 입 아프게 방아를 찧어 보아야 말짱 헛일이야. 효바위가 찍어낼 테니까."

여기서 이 고을 사람이 아니고는 못 알아들을 대목이 있다. 즉, 길고 짧은 건 손을 얹어봐야 안다라는 말과 효바위가 어떻고 하는 말이다.

이 고을에는 고을 대대로 내려오는 비밀스러운 바위가 있다. 다른 고을에 알려지면 그 효험이 없어진다 하여 쉬쉬하고 있는 효바위가 바로 그것이다.

효바위란 동네 약수터 옆에 자리잡은 맷돌 크기 만한 바위로서, 매해 효자, 효녀, 효부를 뽑을 때 이 바위에 손바닥을 얹어 그 위에 파인 자국의 깊고 얕음을 보고 그 해의 효자, 효녀, 효부를 가려내고 있었다. 이효바위는 평소에는 발로 짓밟아도 아무 자국이 나지 않지만 가을이 되어 효자, 효녀, 효부를 뽑을 때에만 거기다 손바닥을 얹으면 효성의 정도에 따라 누구는 깊게, 누구는 얕게, 심지어는 가짜 효자, 효녀, 효부는 파이기는커녕 위로 부풀어오르기까지 했다. 그래서 이 고을 사람들은 대대로 효바위에 손바닥을 얹어보는 것으로 효자, 효녀, 효부를 가려내고 있었다.

마침내 시험의 날이 왔다. 추려진 대표 중에서, 먼저 눈먼 아버지를 깍듯하게 봉양하였다는 효녀 후보가 효바위에 손바닥을 얹었다. 깊지는 않지만 희미하게 자국이 났다.

다음은 머리를 단정하게 빗은 강첨지댁 며느리가 효바위에 손을 얹었다.

"어?"

고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눈을 의심했다. 올 가을의 효부는 누가 뭐래도 이 며느리일 것으로 모두 믿고 있었는데, 효바위 위에 아무 자국도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희미한 자국도 보이지 않잖아?"

"눈가림 효부였나?"

분위기가 뒤숭숭해진 가운데 끝으로 감나무 집의 더벅머리 총각이 두툼한 손바닥을 효바위에 얹었다.

그 효자가 효바위에서 손을 떼는 순간,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의 입에서 일제히 함성이 터져나왔다.

"와, 깊다."

"역시 효바위는 못속인다니까."

일은 여기서부터다. 감나무 집 더벅머리 총각의 손바닥 자국을 본 고을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강첨지댁 며느리 쪽으로 눈길을 모았다. 그들은 비록 입을 다물고는 있지만 속으로는,

'눈가리고 아웅하는 효부였구먼.'

'우리를 속이려 들었어.'

'그 주제에 감히 효바위에 시험을 해보겠다고 나섰다니.'

하며 치를 떨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이렇게 되자 입장이 난처해진 것은 예의 강첨지댁며느리인 것은 물론이고, 강첨지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왜 그러냐 하면 며느리가 한사코 효바위 시험에 나가지 않겠다는 것을 자신이 우겨 억지로 내보냈기 때문이었다.

고을 사람들의 눈초리가 아무리 험악해도 며느리의 효성에 대한 강첨지의 생각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그는 며느리가 한 거동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보아왔기 때문에 한 치도 며느리를 의심하지 않았지만, 효바위에 손바닥 자국이 나지 않은 이상 달리 할말도 없었다. 모두들 쑥덕거리고 있을 때, 강첨지가 사람을 헤치고 앞으로 나가 며느리에게 따뜻한 음성으로 물었다.

"며늘아기야, 할말이 없느냐?"

그러자 며느리는 눈물을 글썽이며 모두를 향해 말했다.

"역시 효바위는 속일 수가 없습니다. 돌이켜 보건대 저는 오늘 이 자리에 나오기 방금 전에도 불효를 저질렀습니다."

며느리는 옷고름으로 눈물을 찍어내고 나서 말을 계속했다.

"여러분도 보셨겠지만, 제 시어머니께서는 곧잘 손자를 업고 다니십니다. 처음에는 예사로 보았지만, 아이가 커가면서 시어머니께서 힘에 부쳐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보기에 민망하고 죄송해서 저는 자주 애를 달라고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시어머니는 '괜찮은데 왜 그러냐?'하시며 싫은 얼굴을 하셨습니다. 오늘 아침이었습니다. 시어머니께서 또 손자를 등에 업은 채 진지를 드시기에 제가, '다듬잇돌 만한 아이를 줄곧 업고만 계시지 말고 내려놓고 진지를 드시지요.'했더니 시어머니께서 몹시 안 좋은 낯빛으로, '그래 이 아이가 무겁기는 다듬잇돌보다 더한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듬잇돌은 내 손자가 아니니까 사랑이 없어 무거울지 모르지만, 이 애는 내 손자이므로 하나도 무겁지 않은 걸 어쩌란 말이냐. 네가 내 즐거움을 자꾸 빼앗으려 하니 내가 노엽구나.' 하시며 저를 꾸짖으셨습니다. 속은 모르는 채 겉만 위하느라 어머니의 즐거움을 빼앗으려 하였으니, 제가 어떻게 효부이겠습니까? 효바위에 자국이 나지 않은 게 당연한 일이지요."

강첨지의 며느리가 말을 마치고 내려가자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며느리 다시 한번 효바위에 손을 얹어 보라고 합시다."

"그렇소, 다시 시험해 봅시다."

이렇게 하여 며느리는 다시 효바위에 손을 짚었다. 사람들이 기대했던 대로 이번에는 손바닥 자국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그런데 감나무 집 효자의 손바닥과 비교하여 보니 사람들의 눈대중으로는 도저히 가려낼 수없을 정도로 그 깊이가 비슷했다. 으뜸상이 더벅머리 총각이냐, 아니면 강첨지댁 며느리냐 하는 문제로 장내가 시끄러워지자, 고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노인이 나서더니 위엄있게 한 마디 했다.

"올해 으뜸상은 마땅히 이 며느리가 차지해야 하오. 왜 그런고 하니, 자식으로서 제 부모에게 효도하기는 쉬우나 남의 자식으로 태어나 시집와서 시부모에게 효도하기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올해 으뜸상은 이 며느리가 차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6. 현대사회에서의 효도 10훈

 

하나, 건강하라.

옛말에 "신체발부(身體髮膚)는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라 감히 훼상하지 않으니 효의 시작이니라."고 하였다. 부모님이 주신 육신을 건강하게 보존해 나가는 것이 자식된 도리의 시작이다.

둘, 부모를 공대하라.

물질적인 봉양만이 효는 아니다. "부모를 공대하지 아니하고 봉양만 하는 경우는 제 집에 키우는 가축에게도 할 수 있는 일이다."라고 공자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는 부모님을 공경하여 존댓말을 사용할 것이며 부모님 말씀을 거역하는 행위를 말아야 한다. 셋, 출필곡 반필면(出必告 反必面) -드나들 때는 반드시 인사를 - 하라.

집을 나갈 때는 어디에, 왜, 언제까지 다녀오겠다고 아뢰고, 다녀와서는 잘 다녀왔다고 얼굴을 뵙고 인사를 드리는 것이 부모를 공대하는 것이요. 걱정을 덜어 드리는 일이다.

넷, 밝은 얼굴과 공손한 말씨로 부모를 대하라.

옛말에 색난(色難)이라는 말이 있다. 부모님 앞에서 얼굴 색을 밝게 가꾸기란 쉽지 않지만, 아프고, 짜증나고, 화나고, 슬픈 얼굴로 부모님를 대하는 것은 부모님께 걱정을 끼쳐드리는 일이다. 항시 맑고 밝으며 부드러운 얼굴과 말씨로 부모를 대하면 부모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다.

다섯, 자기 이름을 더럽히지 말라.

자기 이름의 성은 조상에서 나온 것이며, 이름은 부모께서 주신 것이니, 자기 이름을 더럽히는 것을 부모와 조상님을 욕되게 하는 짓이라 불효(不孝) 중에 불효(不孝)이다. 이름을 떨쳐 부모를 영화롭게 못할 망정 욕되게는 하지 말라.

여섯, 거짓말로 부모를 속이지 말라.

거짓에서 불신이 생기면 이는 곧 가정 불화의 시작이다. 거짓은 마약과 같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를 망치는 병으로 이끈다. 항시 진실을 가까이 하여 밝은 가정을 만드는데 힘써라. 옛말에 '참되면 밝고, 밝으면 복되다.'(誠卽明, 明卽福)고 하였다.

일곱, 집안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부모의 수고를 덜어 드려라.

건강한 육신을 갖고 부모에게서 얻어먹기만 할 것인가? 옛말에 '하루 일을 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를 말라.(一日不作 一日不食)'는 말도 있듯이 제방은 스스로 치울 것이며, 부모의 일도 거들어 도와 드려라.

여덟, 형제간에 결코 싸우지 말며 형을 공경하고 아우를 사랑하며 서로 화목하라.

형제는 부모의 같은 배에서 나온 동포이다. 형을 공경하고 아우를 사랑하는 것은 곧 부모를 공경하고 사랑하는 길이다. 또한 한 배에서 나온 형제끼리 싸우는 일은 부모께 큰 슬픔을 드리는 일이다. 부모를 슬프게 하는 자는 불효자이다. 옛말에 "사람의 죄는 3천여가지이나 그 중 가장 큰 죄는 불효이니라."하였다. 상경하애하여 부모님께 화목의 기쁨을 드려라.

아홉, 부모님을 원망하거나 허물을 말하지 말라.

옛말에 "아버지는 아들의 덕을 자랑하지 말 것이며, 자식은 어버이의 허물을 말하지 아니할지니라."고 하였다. 자신의 처지를 부모 탓으로 돌리지 말 것이며, 비록 부모님의 허물이 있을지언정 원망하지 말며 공손히 아뢰고 남에게는 결코 말하지 말라.

열, 자기 하는 일에 충실하여 부모를 기쁘게 하라.

매사에 충실하면 이로써 출세할 것이다. 설령, 출세하여 이름을 세상에 떨치지는 못하더라도, 큰 효도가 될 것이다. 옛말에 "몸을 세워 이름을 떨치니 이로써 부모도 드러난다. 이것이 효의 마침이다."라고 하였다.

 

기타

1. 견마지양(犬馬之養) :

공자가 한 말로, 진심으로 공경하는 마음이 없이 그리 부양만하는 것을 뜻함. 집에서 개나 말을 기르는 것과 같다는 뜻

望雲之情(망운지정) : 객지에서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

반의지희(斑衣之戱) : 부모를 위로하려고 색동 저고리를 입고 기어가 보임

반포지효(反哺之孝) : 자식이 자라서 어버이의 은혜에 보답하는 효성

반포보은(反哺報恩) : 자식이 부모가 길러 준 은혜를 갚음

백운고비(白雲孤飛): 멀리 떠나는 자식이 어버이를 그리워 함

백유지효(伯兪之孝) : 韓伯兪는 효성이 지극하여 어머니로부터 종아리를 맞아도 아프지 않다하여 어머니의 노쇠함을 탄식함.

풍수지탄(風樹之嘆) : 효도하고자 할 때에 이미 부모는 돌아가셔서, 효행을 다하지 못하는 슬픔. 수욕정이풍부지 樹欲靜而風不止 나무는 고요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욕양이친부대 子欲靜而風不待 자식이 효도를 하려하지만 부모는 기다리지 않는다.

효조(孝鳥) 또는 자오반포(慈烏反哺) : 까마귀도 반포(反哺)하는 정이 있다는 뜻. 까마귀는 어릴 때먹여주던 어미 까마귀가 늙어서 제 구실을 못하게 되면 자식 까마귀가 먹을 것을물어다가 제 어미를 먹인다고 한다.

손순매아 孫順埋兒 : 손순이라는 사람이 흉년이 들자 부모님을 봉양하기 위해 식구를 줄이려고 아이를 땅에 묻었다는 것

時曰 父兮生我하시고 母兮鞫我하시니 哀哀父母여 生我(句力)勞삿다 欲報深恩인대 昊天罔極이로다.

-.시에 이르기를 “아버지 나를 낳으시고 어머니 나를 기르시니 아아 애닯다 부모님이시어 나를 낳아 기르시느라고 애쓰고 수고하시었다. 그 은혜를 갚고자 한다면 넓은 하늘도 끝이 없네”라고 하였다.

子曰 孝子之事親也에 居則致其敬하고 養則致其樂하고 病則致其憂하고 喪則致其哀하고 祭則致其嚴이니라.

-.공자가 말하기를 “효자가 어머니를 섬기는 것은 기거하심에는 그 공경을 다하고 봉양함에는 즐거움을 다 하며 병드신 때엔 근심을 다하고 돌아가신 때엔 슬픔을 다하며 제사지낼 때엔 엄숙함을 다한다.”고 하셨다.

子曰 父母在어시든 不遠遊하며 遊必有方이니라.

-.공자가 말하기를 “부모가 살아 계시면 멀리 놀지 않으며 노는 것이 반드시 방법이 있느니라.”라고 하셨다.

子曰 父命召어시든 唯而不諾하고 食在口則吐之니라.

-.공자가 말하기를 아버지가 부르시면 즉시 대답하며 머뭇거리지말고 음식이 입에 있거든 이를 뱉을 것이다.“라고 하셨다.

太公이 曰 孝於親이면 子亦孝之하나니 身旣不孝면 子何孝焉이리오.

-.태공이 말하기를 “자신이 어버이에게 효도하면 자식이 또한 나에게 효도한다. 자신이 어버이에게 효도를 하지 않는다면 자식이 어찌 나에게 효도하겠는가?”라고 하셨다.

*孝順은 還生孝順子요 忤逆은 還生忤逆子하나니 不信커든 但看詹頭水하라 點點滴滴不差移니라.

-.효순한 사람은 또한 효순한 아들을 낳으며 오역한 사람은 또한 오역한 아들을 낳는다. 믿지 못하겠거든 저 처마끝의 낙수를 보라. 방울 방울 떨어져 내림이 어긋남이 없는 것을.

*孫順이 家貧하여 與其妻로 傭作人家以養母할새 有兒每奪母食이라 順이 謂妻曰兒奪母食하니 兒는 可得이어니와 母難再求라하고 乃負兒往歸醉山北郊하여 欲埋堀地러니 忽有甚寄石種이어늘 驚怪試撞之하니 春容容可愛라 妻曰得此寄物은 胎兒之福이라 埋之不可라하니 順이 以爲然하여 將兒與種還家하여 縣於樑撞之러니 王이 聞種聲이 淸遠異常而覈聞其實하고 曰昔에 郭巨埋子엔 天賜金釜러니 今孫順이 埋兒엔 地出石種하니 前後符同이라하고 賜家一區하고 歲給米五十石하니라.

-.손순이 집이 가난하여 그의 아내와 더불어 남의 머슴살이를 하여 그 어머니를 봉양하는데 아이가 있어 언제나 어머니의 잡수시는 것을 뺐는지라. 순이 아내에게 일러 말하기를 “아이가 어머니의 잡수시는 것을 빼았으니 아이는 또 얻을 수 있거니와 어머니는 다시 구하기 어려우니라. 하고, 마침내 아이를 업고 취산 북쪽 기슭으로 가서 묻으려고 땅을 팠더니 문득 심히 이상한 석종이 있거늘 놀랍고 이상하게 여기어 시험삼아 두드려 보니 울리는 소리가 아름답고 사랑스러운지라. 아내가 말하기를, ”이 기이한 물건을 얻은 것은 아이의 복이니 땅에 묻는 것은 옳지 못하느니라.“ 순도 그렇게 생각해서 아이를 데리고 종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서 대들보에 달고 이것을 울렸더니 임금이 그 종소리를 듣고 맑고 늠름함을 이상하게 여기시어 그 사실을 자세히 물어서 알고 말하기를, ”옛적에 곽거가 아들을 묻었을 때엔 하늘이 금으로 만든 솥을 주시었더니 이제 손순이 아들을 묻음에는 땅에서 석종이 나왔으니 앞과 뒤가 서로 꼭 맞는다, 말씀하시고, 집 한 채를 주시고 해마다 쌀 오십석을 주셨느니라.“

尙德은 値年荒癘疫하여 父母飢病濱死라 尙德이 日夜不解衣하고 盡誠安慰하되 無以爲養則刲脾肉食之하고 母發癰에 吮之卽癒라 王이 嘉之하여 賜賚甚厚하고 命旌其聞하고 立石紀事하니라.

-.상덕은 흉년과 열병이 유행하는 때를 만나서 어버지와 어머니가 굶주리어 죽게 된지라. 상덕이 낮이나 밤이나 옷을 풀지 않고 정성을 다하여 안심을 하도록 위로 하였으되 봉양할 것이 없으므로 넙적다리 살을 베어 잡수시도록 하고 어머니가 종기가 남에 빨아서 곧 낫게 하니라. 임금께서 이 말을 하니라.“

都氏家貧至孝라 賣炭賣肉하여 無闕母饌이러라 一日은 於市에 晩而忙歸러니 鳶忽攫肉이어늘 都悲號至家하니 鳶旣投肉於庭이러라 一日 母病索非時之紅柿어늘 都 彷徨柿林하야 不覺日昏이러니 有虎屢遮前路하고 以示乘意라 都 乘至百餘里山村하야 訪人家投宿이러니 俄而主人이 饋祭飯而有紅柿라 都 喜問柿之來歷하고 且述己意한대 答曰亡父嗜柿故로 每秋擇柿二百個하야 藏諸窟中而至此五月則完者不過七八이라 今得五十個完者故로 心異之러니 是天感君孝라하고 遺以二十顆어늘 都謝出門外하니 虎尙俟伏이라 乘至家하니 曉鷄喔喔이러라 後에 母以天命으로 終에 都有血淚러라.

-. 도씨는 집은 가난하나 효도가 지극하였다. 숯을 팔아 고기를 사서 어머니의 반찬을 빠짐 없이 하였느니라, 하루은 장에서 늦게 바삐 돌아오는데 소리개가 고기를 채 가거늘 도씨가 슬피 울며 집에 도라아와서 보니 소리개가 벌써 고기를 집안 뜰에 던져 놓았더라. 하루는 어머니가 병이나서 때 아닌 홍시를 찾거늘 도씨가 감나무 수풀에 가서 방황하여 낱이 저물은 것도 모르고 있으려니 호랑이가 있어 앞길을 가로 막으며 타라고 하는 뜻을 나타내는지라. 도씨가 타고 백 여리나 되는 산 동네에 이르러 사람사는 집을 찾아 잠을 자려고 하였더니 얼마 안되어서 주인이 제사 밥을 차려 주는데 홍시가 있는지라. 도씨가 기뻐하여 감의 내력을 묻고 또 나의 뜻을 말하였더니 대답하여 말하기를 “돌아가신 아버지가 감을 즐기시므로 해마다 가을에 감을 이백개를 가려서 모두 굴 안에 감추어 두나 이 오월에 이르면 상하지 않는 것 7, 8개에 지나지 아니하였는데 지금 쉰 개의 상하지 아니한 것을 얻었으므로, 마음 속에 이상스럽게 여겼더니 이것은 곧 하늘이 그대의 효성에 감동한 것이라.”하고 스무 개를 내어 주거늘 도씨가 감사한 뜻을 말하고 문밖에 나오니 호랑이는 아직도 누워서 기다리고 있는지라 호랑이를 타고 집에 돌아오니 새벽 닭이 울더라. 뒤에 어머니가 천명으로 돌아가시매 도씨는 피눈물을 흘리더라.

子曰 爲善者는 天報之以福하고 爲不善者는 天報之爲禍니라.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착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하늘이 복을 주시고 악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하늘이 재앙을 주시느니라.”고 하셨다.

漢昭烈이 將終에 勅後主曰勿以善小而不爲하고 勿以惡小而爲之하라.

-.한나라의 소열황제가 죽을 때 후주에게 조칙을 내려서 말하기를 “선이 작다고 해서 아니치 말며, 악이 작다고 해서 하지 말라.”고 하셨다.

莊子曰 一日不念善이면 諸惡이 皆自起니라.

-.장자가 말하기를 “하루라도 착한 일을 생각지 않으면 모든 악한 것이 저절로 일어나느니라.”고 하셨다.

太公曰 見善如渴하고 聞惡如聾하라 又曰 善事란 須貪하고 惡事란 莫樂하라.

-.태공이 말하기를 “착한 일을 보거든 목마를 때 물본 듯이 주저하지 말며, 악한 것을 듣거든 귀머거리 같이 하라” 또 “착한 일이란 모름지기 탐내야 하며, 악한 일이란 즐겨하지 말라.”고 하셨다.

馬援曰 終身行善이라도 善猶不足이요 一日行惡이라도 惡者猶餘니라.

-.마원이 말하기를 “한평생 착한 일을 행하여도 착한 것은 오히려 부족하고 단 하루를 악한 일을 행하여도 악은 스스로 남음이 있느니라.”고 하셨다.

司馬溫公이 曰 積金以遺子孫이라도 未必 子孫이 能盡守요 積書以遺子孫이라도 未必 子孫이 能盡讀이니 不如 積陰德於冥冥之中하야 以爲子孫之計也니라.

-.사마온공이 말하기를 “돈을 모아 자손에게 넘겨 준다 하여도 자손이 반드시 다 지킨다고 볼 수 없으며, 책을 모아서 자손에게 남겨 준다 하여도 자손이 반드시 다 읽는다고 볼 수 없다. 남모르는 가운데 덕을 쌓아서 자손을 위한 계교를 하느니만 같지 못하느니라.”고 하셨다.

景行錄에 曰 恩義를 廣施하라 人生何處不相逢이니 讐怨을 莫結하라 路逢狹處면 難回避니라.

-.<<경행록>>에 말하기를 “은혜와 의리를 널리 베풀라. 인생이 어느곳 에서든지 서로 만나지 않으랴? 원수와 원한을 맺지 말라. 길좁은 곳에서 만나면 피하기 어려우니라.”고 하셨다.

莊子曰 於我善者도 我亦善之하고 於我惡者도 我亦善之니라 我旣於人에 無惡이면 人能於我에 無惡哉인저

-.장자가 말하기를 “나에게 착한 일을 하는 자에게도 내,또한 착하게 하고 나에게 악한 일을 하는 자에게도 내 ,또한 착하게 할 것이다. 내가 이미 남에게 악하게 아니 하였으면 남도 나에게 악하게 할 수 없을 것이니라.”고 하셨다.

東岳聖帝垂訓에 曰 一日行善이라도 福雖未至나 禍者遠矣요 一日行惡이라도 禍雖未至나 福者遠矣니 行善之人은 如春園之草하여 不見其長이라도 日有所增하고 行惡之人은 如磨刀之石하여 不見其損이라도 日有所虧니라.

-.동악 성제가 훈계를 내려 말하기를 “하루 착한 일을 행할지라도 복은 비록 이르지 아니하나 화는 스스로 멀어진다. 하루 악한 일을 행할지라도 화는 비록 이르지 아니하나 복은 스스로 멀어진다. 착한 일을 행하는 사람은 봄 동산에 풀과 같아서 그 자라나는 것이 보이지 않으나 날로 더하는 바가 있고, 악을 행하는 사람은 칼을 가는 숫동과 같아서 갈리어서 닳아 없어지는 것이 보이지 않아도 날로 이지러지는 것과 같으니라.”고 하셨다.

子曰 見善如不及하고 見不善如探湯하라.

-.공자가 말하기를 “착한 것을 보거든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이 하고 악한 것을 보거든 끓는물을 만지는 것과 같이 하라.”고 하셨다.

출처 : 동양문화이야기
글쓴이 : 예문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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