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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의 고무신 -**-

미르뫼 2014. 8. 20. 23:18

 

 

        아버지 고무신

 


               - 하성운 -

 


뒤꿈치 헐었다고 위엄마져 헐었다더냐

댓돌 위 앉아만 있어도 태산 같은 아버지시다

물을 벗어나지 못하는 물고기 마냥

나무를 벗어나지 못하는 송충이마냥

비탈길 살펴가며 이끌어온 고무신,

 

누군들 비단길 사뿐사뿐 가고픈 마음인들

없었겠는가

하루에도 수 십 번 울컥울컥 토해 버리고 싶은 삶,

새벽부터 밤늦도록 질퍽한 길,

시린 돌 뿌리 차가며 찍어놓은 신발 자국

 

작은 가슴으로 어찌 그 속을 알겠소만,

반생을 살아온 지금도 난 모르오

긴 사래밭 고랑에 앉아

하얀 담배연기 허공에 한숨 섞어 내뿜으시던

아버지...

 

차갑게 느껴지던 절벽 같은 아버지 등에도

따스한 피가 흐르고 있다는 걸

등에 업혀 냇물 건널 때 비로소 알았습니다


소등에 가을 곡식 바리바리 싣고

하얀 고무신 뽀얗게 닦아신고

사뿐사뿐 장에 가시던,

해거름 저잣거리 국밥집 탁배기 한 사발에

꼬부라진 육자배기 흥얼흥얼 밟고 오시던

 

오늘은 아버지가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