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헌서(湛軒書)는 홍대용(洪大容) 덕보(德保) 선생이 지은 것이다.
1. 湛軒書(담헌서) 외집3권(外集卷3) 항전척독 (杭傳尺牘)
건정동필담 속 (乾淨衕筆談 續) 24일 기록을 보면...
24일 소음에게 편지했다. 글에 이르기를,
“대용은 재배하옵고 소음 선생 족하(足下)에 글을 올립니다. 용이 10년 전에 운명을 산출해내는 술객(術客)을 만났더니, 말하기를 ‘저의 운이 병술년이 되면 크게 형통하여 과거(科擧)에 급제하고 영귀하게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말하기를 ‘나는 재주도 졸렬하고 학업도 정밀하지 못하며 또 성질이 꼿꼿하고 사람을 깔보기 잘하여 세상에 영합하지 못하니, 과거에 급제하여 영화의 길을 걷는 것은 나의 뜻하는 바가 아니다.’ 하였습니다. 술객은 말하기를 ‘운수라는 것은 하늘의 명이니 명을 받지 않으면 반드시 기화(奇禍)가 돌아오거나, 그렇지 않으면 크게 기쁜 일이 생기게 될 것이다.’ 하였습니다. 나는 그러냐고 하면서도 자못 믿을 만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 뒤 공사(貢使)를 따라 중국에 들어오게 됨에 이르러 문득 생각하기를, 술객이 말한 크게 기쁜 일이란 헛말이 아니로구나, 하였습니다. 그랬는데 강을 건너 서쪽으로 오매 산천이 사납고 모래가 하늘에 날리며 술집이나 음식점에서 보는 인물들이 모두 용렬하고 어리석었으며, 또 수천 리를 달려오는 동안에 온 눈에 띄는 것이 모두 쓸쓸하고 기분 상하는 것뿐이어서 도리어 당초 생각과는 틀리는 실망에 빠지게 되니, 술객의 말한바 기화란 것이 이것이나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뒤 두 분 형을 만나 간담을 헤치고 진정을 쏟아 친교를 두터이 맺음에 미쳐서는 이른바 기화가 다시 변해서 큰 기쁨이 된다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하여 술수의 조그만 재주도 볼 만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어제 또 두 분 형을 인하여 우리 소음 노형(老兄)을 절하여 만나 보게 되었는데, 그 흉금을 터놓고 담소함이 유덕하고 유언(有言)하여, 헌앙 뇌락한 기싱이 오고가는 술잔과 농담 사이에 드러나시니, 이에 있어서 퍼뜩 놀래고 크게 깨달아 생각하기를, 술객의 뜻이 이에 있었던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나로 하여금 과거에 급제하고 영화의 길을 밟아 술객의 말과 같이 되었더라면, 저 명리의 마당과 사환의 바다 사이에서 떴다 가라앉았다 했을 터이니, 이는 가련한 일이지 어찌 크게 기뻐할 일이 되겠습니까? 이제야 어제의 통쾌하고 즐거웠던 일이 이른바 기화를 액막음한 것인 줄을 알았으며, 이른바 과거다 영도(榮道)다 하는 것은 이제부터는 물고기가 강호(江湖)에서 놀며 서로 잊어버리듯 할 것입니다. 비록 그러나 돌아갈 날이 기한이 있어 이별의 괴로움이 장차 마음을 상하고 간장을 찢게 할 것이므로, ‘기화’라고 한 것이 또한 근리한 말이니 이를 어찌합니까? 이로 인하여 그윽이 청할 일이 있습니다. 전번에 두 분 형이 주신 글과 시는 장차 폐려(弊盧)를 빛나게 장식하여 하국(下國) 소생(小生)의 더없는 영광이 되겠습니다. 다만 혼의(渾儀 혼천의(渾天儀))의 제작은 자못 심력을 기울인 것이오니 대문장가의 글을 얻어 그 일을 정중하게 하려고 하였던 바, 이제 다행히 우리 노형을 만나 뵈오니 당세의 대문장이 노형이 아니고서 누구이겠습니까? 부디 일필의 노고를 아끼지 마시고 제의 소망을 이루게 하여 주십시오.”
그 농수각(籠水閣) 혼천의(渾天儀) 기사에 이르기를,
“기묘년 가을에 금성(錦城)으로부터 서석(瑞石)의 유람을 할 때 나석당(羅石塘 담헌과 혼천의를 만들었다) 경적(景績)을 동복(同福) 물렴정(勿染亭) 아래로 심방하였다. 석당은 남국(南國)의 기이한 선비로서 은거하여 옛것을 좋아하는데 나이 이미 70여 세이다. 그 손수 만든 후종(候鍾 시계)을 보니 서양 법에 유래하였는데, 제작이 정밀하여 하늘의 신묘한 공을 빼앗을 만하다. 나는 그 재주와 고안의 교묘함을 신기하게 여겨 몇 시간 동안을 더불어 이야기하여 보니 용미(龍尾)ㆍ항승(恒升)ㆍ수고(水庫)ㆍ수마(水磨) 등의 유(類)를 연구하지 않은 것이 없어 모두 그 묘법을 얻었다. 나중에 말하기를, ‘선기옥형(璿璣玉衡 지금의 혼천의와 같은 것) 혼천(渾天)의 제도는 주자의 남겨놓은 법이 있으나 자세히 말하지 아니하였고, 후세 사람들의 고증한 것도 없어서 이에 감히 의문되는 것은 버려두고 결함된 것은 보충하되 서양의 방법을 참고하여 우러러 관찰하고 구부려 생각하기를 거의 수년을 해서 대략 방법을 이뤄 놓은 것이 있으나, 집이 가난하여 자력이 없으므로 제작의 비용을 장만하지 못해서 그 뜻을 이루지 못한다.’고 하였다. 대개 혼천의 제도는 나도 일찍이 관심을 두었으나 그 요령을 얻지 못하였다. 도산(陶山)의 퇴옹(退翁)이 제작한 것이나 화양(華陽)의 우암(尤庵)이 제작한 것은 모두 파괴 손상되고 소략(疎略)하여 증빙할 만한 것이 없었다. 이에 석당의 재능이 있음을 기뻐하여 그 재주를 크게 활용하여 옛 성인의 법상(法象)을 다시 세상에 전하게 하리라 생각하고, 다음해 첫여름에 석당을 금성 부중(錦城府中)으로 초빙해 오고 재력을 많이 들여서 수교 있는 장인(匠人)들을 불러들여, 두 해가 지나서 대략 이루어 놓았다. 다만 그 도수(度數)에 자못 착오가 있었고 기물이 혹 쓸데없이 번쇄한 것도 있어서, 이에 나의 마음대로 번잡한 것을 버리고 간이(簡易)하게 하여 힘써 천상(天象)에 맞게 하였고, 또 후종(候鍾)의 제도를 취하여 많은 증손(增損)을 가해서 톱니바퀴가 서로 돌아 밤낮으로 하늘을 따라 운전함이 각각 그 도수를 얻게 하였는데, 또 한 해가 지나서야 제작을 마쳤다. 석당의 문인에 안처인(安處仁)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정밀한 생각과 특출한 기교(技巧)는 깊이 석당의 학술을 얻었었다. 이 일을 하는데 있어 명물(名物)과 도수(度數)에 관한 것은 대개 석당 나공(羅公)의 뜻에서 나왔고, 제작의 교묘한 기술은 안씨의 손에서 많이 이뤄졌다. 그 제도는 안과 바깥의 양층(兩層)으로 되었는데, 그 외층(外層)은 쇠를 단련(鍛鍊)해서 세 개의 고리를 만들어 육합의(六合儀 혼천의 세 탑 중에서 제일 바깥에 설치된 것)의 제도를 본받아 그와 같이 서로 연결시켜 놓았고, 그 평치(平置)한 것으로 지평규(地平規)를 삼아 그 주위에 24위(位 지면상(地面上)의 방위)와 사시(四時)와 일도(日道)의 장단을 표시하고, 아래는 십자[十] 모양의 틀[機]로 이어받게 하였다. 그 안에 있는 것도 세 개의 고리를 만들되 삼신의(三辰儀)의 제도와 같이하여, 남북으로 축(軸)을 설치하여 통관(通貫)해 놓고 고리 한 개를 가로 세우고 주천(周天)하는 일월성신 등의 도수를 표시해 놓았으니 이것이 적도(赤道)이며, 별도로 한 개의 고리를 설치하여 3백 개의 톱니[牙]를 만들어서 삼신의(三辰儀) 안에 비스듬히 설치해 놓았으니 이것이 황도(黃道)이다. 위로 태양(太陽)의 진상(眞像)에 붙이고 기계(機 고동틀)를 설치하여 날로 한 톱니씩 밟아 옮겨 우회전(右廻轉)하여 백일 만에 한 바퀴 하늘을 돌게 해놓고, 또 한 개의 고리를 설치하되 1백 14개의 톱니를 만들어서 황도 안에 설치해 놓고 위에 태음(太陰)의 진상(眞像)에 붙이고, 역시 기계를 설치하여 하루에 네 개의 톱니를 밟아 옮겨 우회전하여 28일 조금 넘어서 한 번 하늘을 돌게 하였으니, 별[星]의 혼중(昏中)과 해의 장단과 달의 회삭(晦朔)과 현망(弦望)의 소이를 이에 상고할 수 있다. 가운데는 평철판(平鐵板)을 놓고 산하총도(山河摠圖)를 새겼으니, 땅이 가운데 있는 것을 모양 보인 것이다.
내의(內儀)의 외측에 북극을 중앙으로 하여 한 개의 고리[環]를 설치하고 3백 59개의 톱니를 만들고 별도로 기륜(機輪)을 의(儀)의 북에 설치해 놓은 다음에, 작고 긴 축을 또 설치하고 15개의 톱니바퀴를 그 끝에 베풀어서 북극의 고리에 집어넣어 이끌어 돌아가게 하니, 삼신(三辰)의 운행하는 묘가 오로지 이에 있다. 지판(地板)의 밖에 한 개의 고리를 설치하고 주위에 분각(分刻)을 표시하여, 태양을 따라 그 시각을 보게 하며 기륜의 위에 시각을 알리는 종이 있다.
내의(內儀)의 위에 비로소 구리철사를 가지고 그물을 맺어 구슬을 달아 성수(星宿)를 모상(模象)하니, 삼신(三辰)의 진상이 완전하게 갖춰질 수 있으나 너무 눈부시게 비치므로 아직 그만두고, 별도로 일의(一儀)를 베풀어 양층(兩層)을 원제(原制)와 같이 종이를 붙여 그 가운데를 비게 하고 정원(正圓)을 한가운데를 나누어 내의(內儀)의 위에 합하게 하여 견고하고 꿰매서 계란 모양을 이뤄 놓으며, 상원(上圓)의 주천(周天)하는 성수와 황적(黃赤) 일월의 도이며 그 북극의 고리와 자전(自轉)하는 법과 십자(十字) 모양의 기계 등은 모두 원의(原儀)와 같이 하였다. 이 제작에서 비록 일월의 진상은 없지만 성수의 도수를 찬연하게 상고할 수 있는 것은 또 원의의 미치지 못할 바이다.
혼의가 이미 이뤄지매 호장(湖庄)에다가 옮겨 설치해 보았으나 건물이 좁고 누추하고 또 더럽혀서는 안되겠으므로 이미 재사(齋舍)의 남쪽에 새로이 네모진 못을 파놓고 물을 끌어 대놓았으며, 중앙부에 둥근 섬을 만들고 섬 위에 건물을 세워 양의(兩儀)와, 새로이 얻은 서양의 후종을 함께 장치하였다. 두보(杜甫)의 시에,
일월은 조롱 속의 새요 / 日月籠中鳥
건곤은 물 위의 마름이다 / 乾坤水上萍
라는 구절을 따서, 그 각(閣)을 농수(籠水)라고 명명(命名)하였다. 못에는 연이 있고 물고기가 있으며 주위에는 송국(松菊)과 잡풀 등을 심었다. 재사(齋舍)는 띠풀로 처마를 둘렀고 대나무로 난간을 세웠는데, 표연(飄然)한 모습으로 그 북편에 자리하고 있어 자못 그윽한 거처의 우아한 경치를 갖추어 있다.”
하였다.
그 역암(力闇)과 난공(蘭公)에게 준 글에 이르기를,
“작일에는 혹 술로 취하고 혹 덕에 감격되어 화락하게 즐기고 떠들썩하게 논란하여 돌아옴에 무엇이 충만하게 얻어진 것만 같았습니다. 아! 어찌하면 세상 속된 일에서 벗어나고 형식상의 혐의를 타파하고 영원히 제형들로 더불어 손을 잡고 지팡이를 끌며 고송(古松)과 흐르는 물 사이를 소요(逍遙)할 수 있을까요? 육형(陸兄)의 글은 올 때에 바쁜 데 몰려 그곳에다 빠뜨리고 왔으니 이미 자세히 완미(玩味)하지 못하였으므로 전연 기억하지도 못하여 온 밤을 한스럽게 지냈습니다. 곧 찾아서 부쳐 주시기 바라며, 만일 혹 없어졌거든 대신 간청해서 다시 한 벌을 써 받아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앞서 드린 백지서첩은 만일 그 사이에 육형의 글씨를 받아 주시면 더욱 좋겠습니다. 다만 이렇게 가지가지로 번거로운 일을 부탁 올려 자못 형들로 하여금 부탁받은 일 처리에 바쁘게 하여 드리니 매우 황송합니다. 이는 마침내 세심(細心)함과 세속의 인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니 기질(氣質)의 변화하기 어려움이 이와 같은 것이라고나 하겠습니다. 다 베풀지 못합니다.”
하였더니, 소음(篠飮)의 답한 글에 이르기를,
“비(飛)는 돈수(頓首)하옵고 담헌 노제(老弟) 선생 족하에게 올립니다. 비는 윤락(淪落 빠져 떨어짐)하고 불우하여 남들이 칭하는 것이나 자신이 돌이켜 물어 보아도 백에 하나 능한 것이라고는 없으므로 명리(名利)의 길에 뜻을 두지 않은 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여름 6월에 비로소 스승의 독촉과 친구들의 이끌어줌을 받아 이에 아무 준비도 없이 응시하였더니 의외의 요행수로 합격되었습니다. 이번 걸음은 예에 따라 친구와 함께 온 것이요, 다른 소망이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두 분을 만나 충심으로 앙모하게 되었으니 이는 평생 동안 아직까지 가져보지 못한 기이한 인연입니다. 이렇게 되고 보니 지난 가을의 의외의 합격이 모두 오늘의 우연한 상봉을 위하여 인연을 만들어 준 것입니다. 하늘이 우리 수천 리 서로 떨어진 사람들을 연결하여 함께 모이게 하기 위해서 이와 같이 허다한 경영(經營)의 노고를 하였으니, 하늘은 우리들에게 후하였습니다. 설령 작별한 뒤로 서로 그리며 보지 못해서 코허리가 시고 창자가 미어지게 된다 하더라도 오늘 이 모임은 모두 이 생애에서 얻기 어려운 일이라, 다른 사람들은 일생을 마치도록 쉬이 바랄 수 있는 일이 아니니 비(飛)로서 이 뒤에 만나는 기화가 모두 이와 같은 것이라면 얼마든지 달게 받아들여 비록 무축(巫祝)이 있다 하여도 이런 액막이는 바라지 않겠습니다. 알지 못하겠거니와 귀의(貴意)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팔경(八景)은 이미 역암에게서 그 대략을 얻어 보았고 혼의(渾儀)에 관한 것은 비(飛)는 우물 안에 앉은 개구리니 족히 우러러 엿보지 못하겠으나, 이미 부탁의 말씀을 받았으니 마땅히 힘을 다하겠습니다. 혹 시문으로 할지 기(記)로 할지 역암ㆍ추루와 상의하여 응답해 올리겠거니와, 다만 학문한 것이 천박하여 그 제일 뛰어난 훌륭한 제작을 충분히 발휘해 내지 못할 것 같으니 그 황루(荒陋)함을 책망이나 하지 않으시면 좋겠습니다. 많은 품물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제 지었던 글을 이제 돌려 드리니 살펴 받으시기 바랍니다. 망망(惘惘 맥없이 마음을 잃은 모양)한 회포는 26일에 계속하여 다 풀겠으므로 이만 줄입니다.”
하고, 난공(蘭公)의 답서에 이르기를,
“어제 객관에 돌아가신 뒤로 만안하신지 염려됩니다. 조금 전에 귀찰이 이르러 혼의(渾儀) 제도를 보니 마음속에 열수(列宿)를 버리고 있다고 할 만합니다. 이른바 나생(羅生)은 또한 기이한 사람이니 그 사람이 시를 하는지? 만일 지은 것이 있으면 두어 수를 보여 주셔서 기재하게 하여 주시면 어떠하겠습니까? 26일의 기약이 멀지 않으므로 생각하는 정이 약간 위로됩니다.”
하였다.
식후에 삼사(三使)들이 모두 태학(太學)에 갔다. 나와 평중도 함께 따라갔다. 조교(助敎)인 장(張)씨도 절강(浙江) 사람이었으므로 부사(副使)가 묻기를,
“절강의 해원(解元) 육비라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인가요?”
장이 “동향 사람이지만 일찍이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단청(丹靑)을 잘 하죠.”
부사가 “단청으로 이름이 났으면 문학은 그다지 잘하지 못하는가요?”
장이 “그렇지 않습니다. 단청은 여사로 하는 것이지요.”
2. 같은 담헌서 내집 4권(內集 卷四)에 홍대용께서 지은 제문이 여럿있고
그 중 나석당할아버지 제문입니다.
人生有欲。維富與貴。煕煕穰穰。皆集于利。賈用三倍。君子是競。渾世奔馳。熟保眞性。公獨逌然。無忮無懼。潛居蘊玉。沒齒巖竇。時至乘化。俯仰無怍。元氣澹澹。遊彼寥廓。生安死順。於公何傷。有美如公。弗縻軒裳。拾瓦遺珠。聖世之嗟。床有鳴鍾。報時不差。龍尾蜿蜿。激彼泉水。功在裁成。豈云末技。乾道渾渾。七曜垂象。鉤深測微。如視諸掌。本之玉衡。以闕其疑。參之西法。以探其奇。爰啓靈憲。大象咸具。乾坤正位。日月循度。晦朔隨時。節氣弗忒。神機妙鍵。悉出心得。豈惟才美。精神之極。不佞愚迷。與聞是役。捨煩就簡。略有管測。因其成法。妄加潤色。操几就正。知有前期。執訃驚號。有淚如絲。羣疑滿腹。終隔幽明。悠悠我恨。何日可忘。登門雖晩。托契如舊。發篋秘傳。不吝付授。勖以遊藝。開示無斁。匪予足尙。公實盛德。勿染秋溪。楓壁如繡。携琴共賞。事已大謬。斂不憑棺。葬不臨穴。恨結泉塗。靡攄蘊結。千里陳辭。語出衷曲。靈如不昧。庶其鑒格。
제문(祭文)
나석당에게 한 제문[祭羅石塘文]
사람이 나서 하고 싶어 하는 것은, 오직 부(富)와 귀(貴)로다. 사방으로 번잡하게 왕래하는 자가, 모두 이익 있는 곳으로 모여들며, 물건값이 삼 배쯤 뛰어 오르면, 군자(君子)도 이것을 다툰다네. 온 세상이 이욕(利慾)으로만 달려가는데, 뉘라서 타고난 천성을 보전할꼬. 공은 홀로 유연스런 마음으로 남을 해치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았으며, 학식을 지니고 숨어 살다가, 암혈에서 세상을 떠났네. 갈 때가 되어 승화(乘化)했으니, 굽어보나 우러러보나 부끄러움이 없도다. 타고난 천성 깨끗한 그대로, 저 하늘 가운데 부유(浮游)하겠지. 편히 살다가 순하게 죽으니 공에게 무슨 슬픔이 있으랴? 아름답기도 하여라, 공은 벼슬살이에 얽매이지 않았네. 기와는 줍고 진주는 버리니, 성세(聖世)를 위해서는 슬픈 일일세. 책상에 자명종(自鳴鐘)이 있어 시간을 알리는데 어김이 없었고, 서리서리 사린 용의 꼬리가 저 샘물을 격동시켰네, 공효(功効)가 적절히 이룸에 있었으니, 어찌 조그마한 말기(末技)라 하겠는가? 하늘 도(道)가 크고 넓어 칠요(七曜)의 형상(形象)이 드리웠고, 깊이 연구하고 정밀하게 헤아리기를, 손바닥 펴듯 쉽게 하였네. 선기옥형(璿璣玉衡)에 근본하여 그 의심스러움을 없애고 서구(西歐)법에 참작하여, 그 신기함을 탐구하였네. 이에 신묘한 법을 열었으니, 대도(大道)가 모두 갖추어졌다. 천지는 자리가 정해지매 일월(日月)은 도수(度數)에 따르게 되었고, 그믐과 초하루가 시간에 맞아 스물 네 절기(節氣)가 어김없었네. 신기한 기계와 묘한 도구가 모두 마음의 깨달음에서 나온 것이니 어찌 재주만 아름다울 뿐이랴? 정신을 지극히 썼기 때문일세. 재주없고 어리석은 나도, 이 일에 함께 참여하여 번잡함을 버리고 간략함은 취해서, 대 략 조그마한 추측이 있어 그 이루어진 법에 따라, 망령되이 윤색(潤色)하였지. 책상자를 들고 나아가 질정(質正)할 날이 다가올 줄 알았더니, 부음(訃音)을 받고 놀라 부르짖으니 눈물이 흘러 비오듯 하네. 뭇 의심이 뱃속에 가득찼는데, 마침내 유명이 막혔으니 유유한 나의 한, 어느 날에 잊을지.
문하(門下)에 다닌 것은 비록 늦었으나, 서로 마음이 통한 지는 오래되었네. 상자를 열어 그 비법을 전하는데, 나에게 알려 주기를 인색해 하지 않았고, 예술에 힘쓰기를 권유함에 있어 열어 보이기를 싫어하지 않았네. 나에게 취할 만한 장점이 있어서가 아니라, 공의 덕(德)이 훌륭했기 때문일세. 물렴(勿染)의 가을 냇가에, 단풍진 절벽이 수놓은 것 같을 때 거문고를 끌고 함께 구경하려 했더니 일이 이미 크게 어긋났도다. 염(斂)할 때 관(棺)을 잡아보지도 못하였고, 장사 때 묘소에도 가 보지 못했네. 한(恨)이 구천(九泉)에까지 사무쳤으나, 마음에 맺힌 것을 풀 길이 없어라. 천 리를 와서 글로 아뢰매 말은 충심(衷心)에서 우러나옵니다. 영혼이 어둡지 않다면 거울처럼 밝게 이르러 보소서.
한국고전번역원의 자료중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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