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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안진경 쟁좌위첩에 대하여..

미르뫼 2010. 8. 28. 23:09

 

 

<사진자료 : 삼도헌 정태수 지기님>

 

 

쟁좌위첩

                                              

서예를 익히자면 몇 가지 단계를 거쳐야 한다. 글씨 쓰는 법(書法)을 다양하게 익혀야 하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쟁좌위첩(爭座位帖)이 있다. 쟁좌위첩은 안진경(顔眞卿)의 행서체 서첩이다. 4세기 이래 중국의 서예술은 우군 장군 왕희지의 서법이 풍미하고 있었는데 8세기에 이르러 왕 우군을 제치고 중원 땅에 제2의 서 물결을 불러일으킨 서예가가 안진경이었다.


▼안녹산이 양귀비와 밀애를 즐기다가 현종에게 발각돼 난을 일으키자 나라가 백척간두에 섰다. 이때 안진경은 의병을 일으켜 조정을 위해 크게 싸웠다. 난이 평정되고 현종에 이어 대종이 들어섰을 때는 지방관리(호주자사)로 있었는데 육우가 다경(茶經)을 완성해 놓고 다실을 마련하지 못하자 삼계정(三癸亭)이라는 정자를 지어 주기도 하였다.


▼쟁좌위는 ‘자리다툼’이라는 말이다. 지방관리들이 자리를 놓고 암투를 벌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이를 경계하라고 지방 군왕에게 보낸 편지가 쟁좌위첩이다. ‘가득하고도 넘치지 않는 것이 길이 부를 지 지키는 까닭이다. 높으면서도 위험치 않는 것이 길이 귀함을 지키는 것이다. 다만 네가 자랑하지 않는다면 천하에 너와 재능을 다툴 자는 없을 것이다.’(원문생략)


▼우리들 주변에는 가졌다고 뽐내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고위직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힘이 들어간 목을 숙일 줄을 모른다. 권한을 가진 자에게 잘못 보여 번번이 지방으로 쫓겨 다녀야 했던 안진경의 심사가 쟁좌위첩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자랑’하지 않은 안진경의 재능은 다툼 없는 서 예술이 되어 불멸불후의 문자향으로 역사 속에 남아 내린다.   - 박동선 (경남일보객원논설위원)-

 

* 쟁좌위첩을 공부하며 孫過庭 『書譜』, 를 첨삭받아 올려본다.

 

“至如初學分布, 但求平正, 旣知平正, 務追險絶, 旣能險絶, 復歸平正. 初謂未及, 中則過之, 後乃通會之際, 人書俱老.”

 

“至如初學分布한대 但求平正하고 旣知平正하여는 務追險絶하며 旣能險絶이어든 復歸平正이니라 初謂未及하고 中則過之하고 後乃通會이니라 通會之際 人書俱老하나니라

 

“처음에 分間布白을 배움에 이르러서는 다만 平正을 구하고 이미 평정을 알았으면 힘써 險絶을 추구하고 이미 險絶에 能하면 다시 평정에 돌아가는데, 처음에는 미치지 못하고 중간에는 지나치고 후에는 이미 (平正과 險絶을) 통하여 알게 되니, 통하여 알게 된 때에는 사람과 글씨가 모두 老熟함을 갖추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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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서예세상
글쓴이 : 霓苑(예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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